'간신은 만들어지는 것, 나 스스로도 경계해야'

[책과의수다] 권력이 있는 모든 곳에 생겨나는 내부의 적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간신. 군주의 눈을 흐려 국정을 뒤에서 온단하는 간사한 신하. 격동하는 정치의 역사는 간신의 연대기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역사가 시작된 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간신은 매 순간마다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비단 지금 청와대와 여의도 정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관에도, 기업에도, 하물며 사사로운 모임이나 가족간에도 어디나 '리더'가 있으면 '간신'으로 치부되는 존재도 있게 마련이다.

이 간신이 인간관계를, 조직을, 국가의 운명을, 나가아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도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어떻게 하면 간신을 솎아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많은 현인들이 나름의 해답을 찾고 제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역사, 어떤 조직에도 간신이 있어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간신은 대체 어떤 쓸모를 인정받았기에 사라질 수 없는 것일까?

이 책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는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조선 건국부터 근현대까지, 홍국영부터 김자점, 윤원형, 한명회, 김질, 이완용, 임사홍, 원균, 유자광에 이르는 한국사 대표 간신 9인의 역사를 통해 권력과 조직의 속성을 파헤치고 있다. 욕망에 충실해 사익을 추구하고 싶다면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까지 각오해야 하고(김질), 사냥이 끝난 사냥개는 이빨을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한명회), 누군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역사의 짐승이 될 수밖에 없었던(유자광) 그 배경과 처세술까지 짚어본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대다수의 간신은 군주에 의해 '발명된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 부패로 멸망했다면 이는 간신의 농간 때문이 아니라, 이용하기 위해 발명한 간신을 관리하는 데 군주가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간신은 군주(리더)에게 택함을 받았지만, 동시에 '만들어진 내부의 적'이라는 숙명을 안고 있었다. 군주는 내부를 단속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외부의 적을 활용했다. 만약 외부에서 적을 찾지 못한다면 내부의 적을 새로이 만들어 조직에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간신은 적당히 사용되다가 그 쓸모가 다하면 조직의 오류를 떠안고 버려졌다. 이 때 군주는 간신을 처단해 질서를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세운다는 명분까지 얻는다. 그리고 간신의 숙청 이후 재편된 힘의 구도에서 군주는 다시 궂은 일을 대신하며 오물을 뒤집어써줄 간신을 은밀히 구한다. 그렇게 간신은 끊이지 않고 다시 생겨난다.

간신 한 명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요, 어쩌면 간신이 될 사람, 충신이 될 사람의 구분도 무의미할지 모른다. 역사와 시대의 상황에 따라 건강한 권력 하에서는 충신이, 병든 권력에서는 간신이 태어날 뿐이다. 간신은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간신을 비난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간신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엄중히 경고한다.

"내부이 적이 될 수 있는 간신을 판별하고, 간신이 될 확률이 높은 사람을 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신이 만들어질 환경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한 첫 걸음은 '견제와 균형'이다."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이성주 지음/ 청림출판/ 1만50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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