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바꾼 간편식]아내 대신 간편식 아침상…잔치·제사음식 뚝딱

가정간편식(HMR)ㆍ간편대용식(CMR) 시장은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 증가 등 시대적 요인과 맞물려 편의성, 간편성, 건강성을 충족하며 식품 산업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주요 유통업계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HMRㆍCMR 시장에 속속 출사표를 던지며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시장은 국내를 국한하지 않는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한류 식품의 나아갈 길로 세계적으로 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내 HMRㆍCMR 상품의 확대 및 개발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아시아경제는 총 4회의 기획시리즈를 통해 HMRㆍCMR 산업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의 투자현황과 HMR 시장의 트렌드, 주요 업체들의 기술 개발 현황 등에 대해 살펴본다.

3분 카레로 시작된 간편식…일상 바꿔

1~2인 가구·여성 경제활동이 변화 주도

식품·유통기업 뛰어들며 시장 급성장

편의성뿐만 아니라 가격대비 효율성

집밥 개념 더한 밀키트·유기농 인기

[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오전 6시30분 직장인 김간편(39ㆍ가명)씨는 여느 때처럼 아침밥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김씨는 아침을 직접 차려먹는다. 2살과 4살난 아이를 돌보는 아내를 위해 몇 달 전부터 가정간편식(HMRㆍHome Meal Replacement)으로 메뉴를 바꿨기에 가능했다. 그는 이날 즉석밥과 대형마트 HMR 브랜드의 북엇국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으로 간단히 식사준비를 마쳤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 아내가 직접 요리한 밥을 먹은 날은 손에 꼽는다. 김치는 사먹은 지 오래고 국, 탕, 찌개, 일품요리 모두 HMR로 해결한다. 예전에는 맛없는 냉동식품으로 생각했지만 최근 나오는 HMR는 상상 이상으로 맛이 좋고 종류가 다양해 김씨도 만족하고 있다. 그는 보채는 둘째 때문에 밤잠을 설친 아내가 먹을 양까지 넉넉하게 조리해 밥상을 차려놓고 출근했다. 어느덧 점심시간. 김씨는 최근 회사 옆 헬스장 회원권을 끊은 이후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일이 많아졌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빠르게 밥을 먹으면 그만큼 개인 시간이 늘어나고, 가격도 저렴한 장점이 있어 자주 이용한다. 김씨는 퇴근 길에 아내의 전화를 받고 기업형슈퍼마켓(SSM)을 찾았다.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버섯불고기 전골을 만들던 아내가 생각보다 양이 부족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마침 아내가 먼저 사갔던 버섯 불고기 전골 밀키트와 똑같은 제품이 남아 있었다. 진열대에 놓인 밀키트 제품을 찬찬히 살펴보던 김씨는 다음 달 예정돼 있는 제사도 HMR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1년 오뚜기 '3분 카레'로 시작된 HMR이 한국인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다. 4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우리 식탁 위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외식과 내식(집에서 조리해 먹는 식사) 등 식품 산업 전체가 침체기에 들어선 가운데 유독 HMR시장만 급성장했다.

14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간편식시장'을 보면 국내 HMR시장은 크게 4세대로 구분된다. 1세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다. 1981년 오뚜기 '3분카레'가 출시되면서 국내 HMR시장의 포문을 열었다는 게 정설이다. 2세대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13년까지로, 냉장 면과 죽, 만두 등이 인기를 얻었지만 '식사' 개념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2014년까지로 불리는 3세대는 식품회사가 아닌 유통회사 이마트가 이 시장에 처음 진입하면서 일대 변화가 시작된다. 컵밥, 냉동볶음밥, 국, 탕, 찌개, 떡갈비 등 한식 반찬 등이 쏟아지면서 시장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인 4세대는 식품, 유통기업이 달려들었다.

새로운 유형의 HMR이 쏟아지고 1980~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가족의 주축을 이루면서 급격한 성장이 이뤄졌다. 업계 관계자는 "2세대까지는 HMR시장의 성장 속도가 더뎠다"며 "하지만 주요 유통업체가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익숙해진 고객들의 선택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구조 변화가 시장 성장에 결정적이었다. 1~2인 가구가 대한민국 가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늘어나면서 HMR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김광석 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가 BC카드 디지털연구소에 기고한 연구보고서와 통계청 자료 등에 따르면 올해 전체 가구에서 1인가구의 비중은 29.1%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에는 9.0%에 그쳤던 1인가구 비중이 2015년 26.5%로 급속히 커졌고, 이 같은 속도라면 2035년에는 34.3%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김태희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HMR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여성경제활동 인구의 증가와 1~2인 가구가 늘어난 것에 밀접한 영향이 있다"며 "사회적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늘어날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HMR이 넘보는 영역도 확대일로다. 밥상을 뛰어넘어 잔칫상과 제사상까지 HMR이 침투했다. CJ제일제당이 선보인 비비고 한식반찬의 올해 설 시즌 매출은 지난해보다 11% 성장한 19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해마다 평균 30%씩 늘어나는 추세다.

이마트의 피코크 차례 음식은 지난 설 기간 매출이 전년 설 대비 27.3% 증가했다. 2014년 6종류에 불과했던 피코크 차례용 HMR 상품 수는 지난해 설에는 47종, 올해는 50종으로 확대됐다. 동원홈푸드는 HMR 온라인몰 '더반찬'을 통해 설 명절 '프리미엄 차례상' 예약 한정 판매를 실시한 결과 바로 완판됐다.

지난해 추석 구매 고객 가운데 95%가 재구매 의사를 밝힐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올해는 200세트로 물량을 2배 늘렸다.

HMR이 일상적 상차림을 넘어선 것은 편의성과 속도 때문이다. 롯데멤버스가 내놓은 '트렌드Y HMR 리포트'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HMR을 선호하는 이유로 식사준비가 쉽다(68.4%), 식사준비가 빠르다(68.3%) 등을 꼽았다.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것보다 저렴하다도 37.4%나 차지했다. 가사노동에 투입되는 시간이나 노력을 줄여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다.

김 교수는 "여성경제 활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간편함에 더해 시간을 줄이는 것에 소비자들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이 많아 원재료를 사서 조리를 하는 것이 가격 대비 효율성이 높았지만 현재는 소가족 중심이라 HMR이 가격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다만 '집밥'이라는 개념에서 앞으로는 밀키트와 유기농, 프리미엄 제품이 더욱 인기를 얻을 것"이라며 "편리함에 눈을 뜬 소비자들이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고성장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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