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청론] 강점도 있는 엘리트 체육 없애는게 능사 아냐

1970년대는 고교 야구, 그중에서 재일동포의 방한 경기가 화제였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 고교 야구팀이 크게 늘었다. 신문사가 주최하는 대회마다 참가팀이 북적였다. 선수들은 해가 뜨면 야구장에 가 저녁까지 경기했다. 학교에 안 가니 담임선생님 이름은 물론 몇 반인지조차 몰랐다.

한 기자가 이를 폭로하면서 단숨에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파장은 최근 '체육계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 못지않았다. 이에 1972년 당시 문교부 장관이 대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체육특기자 특별 대학입학제도'다. 모든 팀의 전국대회 출전을 연간 3회로 제한하고 4강(당시 공동 3위)에 들면 대입 자격을 주겠다고 했다. 실력 있는 유망주의 학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정했다고 알려진 특기자 제도가 원래는 과도한 대회 출전과 경쟁을 방지하고 남은 시간엔 학업에 집중하라는 취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후유증을 낳았다. 우선 종목별 특성을 무시했다. 야구는 팀도 많고 경기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역도나 육상, 수영 등은 아니다. 야구 외 종목의 선수에게 연간 3회만 출전하라는 규정은 너무 느슨했다. 또 다른 폐해는 학업에 열중하라고 만든 제도가 오히려 운동만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학생 선수와 지도자, 학부모는 이를 '운동만 잘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라는 특혜로 받아들였다. 원래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는 반대였던 셈이다. 급하게 내놓은 정책은 역효과를 냈고 그렇게 47년이 흘렀다.

체육계 미투 이후 엘리트 체육을 개혁한다며 정부가 쇄신안을 내놓는 현 상황을 보니 당시 모습이 겹친다. 정부는 '대한체육회와 올림픽위원회(KOC)의 분리' '소년체전 무용론' '선수촌 개방' '메달 연금ㆍ병역 혜택 축소' '운동부 합숙 훈련 폐지' 등을 내놨다.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스포츠혁신위원회도 눈에 띈다. 각 분야 전문가가 모인 위원회에서 우리나라 체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에 걸맞은 제도를 마련할 것이라 믿는다. 다만 체육특기자 제도처럼 '중도복철(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언을 덧붙인다. 첫째, 체육계에서 발생한 폭력ㆍ성폭력 사건은 학교 체육의 붕괴에서 비롯됐다. 답은 학교 체육의 정상화에 있다. 학교 운동부가 더 이상 학업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주장은 2011년 학교체육진흥법과 2017년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으로 바뀌는 듯했으나 큰 변화가 없었다.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라고 했다. 선수에게 운동도 잘하고 성적도 우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감독이나 코치에게만 맡겨졌다. 인격 향상에 결핍을 초래할 수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 학교에서는 교사로부터의 교육이 그들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생 선수의 학업이 우선돼야 한다. 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둘째, 부작용도 있지만 엘리트 스포츠의 다수 성공 사례도 기억해야 한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은 우리 기업이 세계로 진출하고 국민소득 5000달러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은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높였다. 다른 나라에서 급성장한 우리 스포츠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올 정도다. 이러한 강점을 단번에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무조건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다.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도 눈앞이다. 우리 체육계의 100년 대계를 수립할 스포츠혁신위에 거는 기대가 크다.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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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공수민 기자 hyunh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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