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은 노인 눈 질환? 젊다고 방치하면 '큰눈' 다쳐요

-증세 나타나지 않는 '시력도둑' 녹내장 주의보

-중장년층부터 환자 늘어…60대 21만명으로 제일 많지만 40세 이하 비율도 17% 달해

-시신경 서서히 약해져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 없어

-손상된 시신경 회복되진 않지만 꾸준히 치료하면 진행 속도 늦출 수 있어

-조기 발견 가능한 정기검진 필수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 #1 2014년 '삼둥이' 열풍을 일으킨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배우 송일국이 녹내장 의심 진단을 받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당시 송일국은 의사로부터 시신경이 80% 손상된 상태라는 설명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 다음 날 정밀 검사에서 꾸준히 관리를 잘하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안타까움과 안도의 감정이 오갔고, 녹내장 정기 검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2 직장인 최모(35)씨는 평소 눈 피로감을 자주 호소한다. 장시간 근무 후 눈이 침침하다고 느꼈고 충혈도 잘 되는 편이다. 안약을 넣어도 그때뿐, 증세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시야가 좁아진 것 같아 안과를 찾았는데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최씨는 "그동안 피곤해서 눈이 불편한 줄로만 알았다"며 "30대인데 녹내장이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최근 '시력 도둑'이라 불리는 녹내장 환자가 늘고 있다. 안압 상승을 일으키는 가족력이나 고혈압, 당뇨, 비만 등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스마트폰 등 IT 기기 사용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녹내장은 노화가 시작되는 40세 이상부터 발병률이 높아지나 젊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김창식 한국녹내장학회장(충남대학교병원 안과 교수)은 "40세 미만 녹내장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녹내장은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질병이나 초기 단계에 발견하면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녹내장 환자 증가세…젊은 층도 주의= 녹내장은 안압 상승 등으로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시야(보는 범위)가 점차 좁아지는 질환이다. 증세가 심해지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어 치명적이다. 안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지만 정상인의 안압은 적절한 범위 안에서 유지된다. 40세 이상 한국인의 평균 안압은 약 14㎜Hg, 정상 범위는 10~20㎜Hg다. 하지만 안압이 정상 수준이라도 녹내장이 발생할 수 있다. 가족력, 당뇨병, 고혈압 등도 녹내장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카페인과 흡연도 위험 인자로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녹내장 환자는 2012년 58만명에서 2017년 87만명으로 5년 새 약 50%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40대 중·장년 층부터 환자 수가 늘기 시작해 60대가 가장 많았다. 2017년 기준 녹내장 환자 수는 30대 7만명에서 40대에 13만명으로 2배가량으로 뛰었다. 이후 50대 18만명, 60대 21만명으로 증가하다 70대 이후 꺾이는 양상을 보였다.

젊은 층이라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2012~2017년 녹내장 환자의 약 17%가 40세 미만이었다. 젊은 층은 주로 고도근시와 가족력에 따라 녹내장이 생긴다. 근시 환자의 눈은 근시가 없는 사람에 비해 앞뒤 길이가 길어져 있어서 두께가 얇고 시신경이 약해 같은 안압에도 쉽게 손상될 수 있기 때문. 2011년 미국 안과학회지의 '개방각녹내장의 위험 요소로서의 근시' 자료를 보면, 근시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녹내장 발병 위험이 약 2배 높았다.

한국녹내장학회가 3월 둘째 주 세계녹내장주간을 맞아 '녹내장, 젊다고 안심하지 마세요'라는 주제로 캠페인을 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영철 김안과병원 녹내장센터장은 "20~30대 녹내장 환자들은 건강검진이나 시력교정수술을 위해 안과를 방문해 질환을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가족력이 있거나 근시라면 젊은 나이에도 녹내장이 발생할 위험이 큰 만큼 안과 진료를 통해 녹내장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료: 한국녹내장학회

◆특별한 증상 없어…40세 이후 정기 검진을= 녹내장이 무서운 것은 특별한 증상이 없어 방치하기 쉽다는 데 있다. 대부분은 시신경이 서서히 약해져 초기에는 녹내장이 있더라도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시신경이 약해지면 초기에는 막연히 흐리게 보이는 정도에 그치다가 이후 물체 일부가 잘 안 보이는 시야 장애를 느낀다. 말기가 되면 일부분만 흐리게 보이고 나머지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고, 결국 모든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실명까지 간다. 그래서 녹내장을 '시력 도둑'이라 부른다.

실제로 녹내장 환자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원발개방각녹내장은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며 시력 손상이 올 때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 색 변화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눈앞이 희미해지거나 지속적으로 눈에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 번 손상된 시신경은 회복되지 않는다. 약해진 시신경을 다시 튼튼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도 현재로선 없다. 다행히 발병 후에도 꾸준히 치료하면 진행 속도를 늦추고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녹내장을 초기에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 시력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녹내장의 치료 목표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보통 안압을 조절해 진행을 막고 약물 치료를 한다. 약물 치료에도 안압 조절이 어렵거나 시야 변화가 진행되면 수술을 하게 된다.

김용연 고려대학교구로병원 안과 교수는 "녹내장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증상이 나타났을 때 말기일 가능성이 커 진단이 늦어지는 만큼 예후가 좋지 않은 편"이라며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손상된 시신경으로 좁아진 시야는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로 안압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면서 "모든 성인은 40세 이후 정기 검진이 필수"라고 말했다.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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