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지 못하는 정당, 떠나가지 못하는 후보

대선 끝난지 석 달 만에…당권 타진하는 敗者들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최근 19대 대통령 선거 낙선자들이 여론의 뭇매에도 당권 도전 등 정치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각종 사건·사고로 운신의 폭이 좁아져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 계파·노선 갈등과 대안 리더십을 찾지 못하는 당의 '빈틈'이 원인으로 꼽힌다.3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 3위 낙선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는 최근 당 대표 선거 도전 여부를 숙고하고 있다. 5·9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87일 만이다. 안 전 대표는 당 안팎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하고 있는 상태며, 출마를 결행할 경우 금명간 입장을 표명한다는 방침이다.2위 낙선자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미 패자(敗者)가 된 지 41일 만인 지난 6월18일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고, 56일 만인 7월3일 당 대표로 당선됐다. '초(超) 광속' 정치 행보를 이어간 셈이다.정치권 안팎에서는 낙선자들이 선거가 끝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당권 도전 등 광폭의 정치행보를 보이는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실제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13대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유력한 대선 낙선자이 정계은퇴나 1년 이상의 정치적 칩거기를 거친 뒤 정계에 복귀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이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까닭이다.당장 14대 대선(1992)에서 패배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년간의 정계은퇴 및 외유를 거쳐 1995년에 정계에 복귀해 대권 4수(修) 등정에 나섰다. 15대·16대 대선의 패자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각각 약 1년의 칩거기와 정계은퇴를 거쳐 당에 복귀했다. 가장 근접한 사례인 문재인 대통령도 18대 대선(2012) 패배 이후 당권에 도전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잠행해야 했다. 북방한계선(NLL) 논란, 세월호 참사 등으로 곧 정치 행보를 재개했지만, 당권에 도전한 것은 3년의 잠행을 마친 2015년이었다.이처럼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홍 대표와 안 전 대표의 공통점은 각종 사건·사고로 위기에 놓여있는 반면 원외인사로서 정치적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홍 대표는 현재 '성완종 사건'으로 기소 돼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고, 안 전 대표 역시 '문준용 의혹 제보 조작사건'으로 정치적 책임론에 휩싸여 있다. 특히나 원외(院外) 인사인 이들이 위기 상황에서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당권 도전 등 극약처방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다.정치권에 오래 몸 담아 온 한 야권 의원은 "홍 대표나 안 전 대표 모두 원외인사로 전락해 버린 상황이어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며 "부정적인 여론에도 두 정치인이 돌파를 선택한 것은 이런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허약해진 각 정당의 리더십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당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와 비박(비박근혜계) 진영의 탈당으로 당내 친박(친박근혜)진영의 구심력이 와해 됐고, 국민의당 역시 호남과 비 호남 모두 대안 리더십으로 떠오를 여력이 없는 상태다. 다시 말해 대선 패배로 야기된 당의 리더십 약화, 노선의 불투명성이 역설적으로 낙선자들의 공간을 열어 준 셈이다.한 정치권 인사는 "이번 대선에서 홍 대표와 안 전 대표는 모두 패배했지만, 개인기로 당의 지지율을 뛰어넘는 성적표를 얻었다"며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낙선자들이 보여준 경쟁력은 당권 도전의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하지만 최종적으로 낙선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대권'일 수 밖에 없다. 다당제 체제 아래서 향후 정치일정이 유동적이고, 정계개편 가능성도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인 만큼 대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일단 당을 장악하는 것이 급선무다.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야당들이 각자의 이유로 리더십이 취약해 진 상태인데다가, 정계개편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주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 개정을 약속한 만큼 향후 정치 일정이 유동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부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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