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영우 화백
한동안 촛불의 거리였던 서울 한복판이, 그날은 온통 등불의 물결이었습니다. 남산 밑을 출발해서 흥인지문을 지나온 빛과 사람의 파도가 보신각 네거리까지 출렁거렸지요. 사월 초파일을 맞는 선남선녀들이 형형색색 연등으로 봄밤을 수놓는 연등회(燃燈會). 올해도 저는 등불의 바다에서 꿈결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옛날 종로서적 앞 길가에 앉아, 동대문 쪽을 바라보았지요. 제 시선은 비스듬히 길을 건너 낯익은 건물 앞에 가 멈췄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제가 찍은 사진들의 배경엔 빠짐없이 YMCA가 보입니다. 제목을 붙인다면 이런 식이 될 것입니다. '기독청년회관 앞을 지나는 흰 코끼리 떼와 아기부처.' 각 대학의 푯말을 앞세운 대학생불자(佛子)연합회의 행렬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대학설립 주체들의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평화로운 장면이었지요. 기독교, 천주교, 불교와 원불교 등이 하나로 어울린 형국이었습니다. 세상에 '차별 없음'을 배운 젊은이들의 풍경답게 조화로웠습니다. 문득 경기도 안양(安養)시나 강화도 불은(佛恩)면 같은 불교적 지명들이 생각나더군요.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 불은은 '부처의 은혜'. 그런 동네 교회나 성당이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 오심을 함께 기뻐합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어른들께서 진작 물꼬를 터주신 덕분이지요. 스님이 성당에 가서 법문을 하시고, 추기경님은 절에 가서 강론을 하셨습니다. 그 뒤로 많은 절과 교회와 성당이 따라 나섰습니다. 서로가 예수와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화계사 신도들이 선보인 '숭산(崇山)스님' 모습의 등불인형에서 결정적인 한마디가 들렸습니다. "온 세상은 한 송이 꽃." 스님의 한결같은 가르침이었지요. 일찍이 만공(滿空)선사가 깨달은 것을, 그분은 몸으로 실천했습니다. 해외포교를 통해 불교세계화의 길을 활짝 열어냈습니다. 최근에 저는 그 사연을 시로 썼습니다. "지구가 한 송이 꽃이란 사실을 유리 가가린보다 먼저,/닐 암스트롱보다 먼저 알고 온 사람이 있었다/가야산 수덕사에 그의 글씨가 있다,/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한 송이 꽃/어디서 보았을까//달에서 보았을 것이다/월면(月面)이란 이름도 쓰던 사람이니까//"(…이하생략…) 우주에 나가보지 않고서 어떻게 '세상이 하나의 꽃송이'인 줄 알았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듣고 나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곰곰 짚어보면 참 크고 무겁고 깊은 깨달음입니다. 산, 강, 길, 논, 밭, 집, 사람 모두가 하나의 이파리. 모여서 거대한 꽃 한 송이를 피워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별이 저 혼자 뚝 떨어져 나가 앉아 있겠습니까. 어느 바다에 씨줄 날줄이 그려져 있겠습니까. 어느 하늘에 날짜변경선이나 국경선이 그어져 있겠습니까. 세상은 마이산(馬耳山) 봉우리처럼 '통짜'입니다. '원피스'입니다. 그렇다면, 지구는 우리의 몸뚱입니다. 우리의 집입니다. '집 우(宇)', '집 주(宙)' 두 글자가 합쳐서 '우주'란 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우주는 모두의 집, 공동의 자산일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증거지요. 푸틴과 트럼프가 한 집에 삽니다. 수진(秀珍)이와 수잔(Susan)이 아래위층에 삽니다. 108호에 스님이 살고 305호에 목사님이 삽니다. 부처님 오신 날, 대통령 후보들이 조계사 법요식(法要式)에 나란히 앉아 있던 장면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새 나라로 데려가려는 이의 마음자리를 헤아려봅니다. 이어서, 그이가 성철스님의 1986년 초파일 법어(法語)를 새겨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꽃밭에서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부처님 아닌 존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거기 당신이 섬기려는 '민심'이 모두 들어갑니다. 촛불과 등불의 마음, 당신이 밝히려는 횃불의 이상도 있습니다. 협치(協治), 탕평(蕩平), 일자리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도 남습니다. 모두의 꿈을 싣고 달릴 수 있는 거대한 비유의 탈것(vehicle)입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 이런 문답(問答)이 있었지요. 제자들이 불안해하며 여쭈었습니다. "스승이시여, 저희는 이제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 스승이 답했습니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스스로를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아 정진해라." 각자가 등불이며, 서로가 '신호등'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슬며시 기다려집니다. 백성들의 어둠은 모조리 사라지고, 이 땅이 '한 송이 등(燈)꽃'이 되는 날.
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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