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기자
태국 아란야프랏텟 국경검문소로 향하는 사람들
태국 수도 방콕에서 동쪽으로 250km 떨어진 사깨우주(州)의 아란야프랏텟 국경검문소.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있는 이 작은 검문소를 통과하면 어느새 태국은 캄보디아가 되고 캄보디아는 태국이 된다. 이곳에선 비자나 관세 없이 두 나라 국민들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간다. 생필품과 각종 자재 등 다양한 물건이 국경을 넘어 태국에서 '수출'되고 불과 몇 분 후 캄보디아로 '수입'된다. ◆ 삶과 꿈의 터전 '국경'= 지난 10일 방콕에서 3시간을 달려 국경검문소가 있는 롱끄리아시장에 도착하자 짐을 한가득 실은 트럭과 오토바이, 수레를 끄는 사람들이 차도와 인도를 가득 메웠다. 태국 최대 연휴인 송끄란을 불과 3일 앞둔 탓에 국경을 오가는 물량이 폭증하면서 평소보다 붐비는 모습이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개방된 국경을 통과한 트럭은 이날 하루에만 250대에 달했다. 오후 1시가 되자 태국 쪽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사람과 차가 뒤엉켰다. 출입국이 일상이 된 태국과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국경은 단순한 경계를 넘어 삶의 일부가 됐다. 온 가족이 국경지대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태국인 피야홍(52)씨는 "최근 들어 국경 무역이 늘고 활성화되면서 한 곳에서 시작한 가게를 이제 세 군데로 넓혔다"며 "송끄란 축제에서 사용할 물총이나 폭죽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같은 기간 캄보디아 역시 연휴를 맞은 탓에 태국에서 물품을 공수해 가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캄보디아 국적으로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시카(25)씨는 국경무역 덕분에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날도 태국 도매상에게서 사온 물건을 수레 가득 쌓아올린 채 국경을 넘었다. 그는 "국경을 통해 물건을 넘겨주면 한 번에 1000바트(약 3만3000원) 정도를 남길 수 있다"며 "캄보디아에서는 이만한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아 학비를 벌기 위해 국경을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태국 아란야프랏텟 국경검문소에서 근무 중인 세관 및 이민국 직원들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이 더디고 생산기반이 약한 캄보디아는 주요 공산품과 생필품을 육로를 통해 태국에서 공수해간다. 태국에서 콜라나 우유 가격이 오르면 캄보디아에서 몇 배가 뛴 값에 거래될 만큼 두 나라는 국경을 통해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런 풍경은 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라오스, 미얀마에서도 펼쳐진다. 태국 북부 딱주(州)의 도시 매솟(Maesot)은 매일 아침 미얀마에서 출근하는 젊은이들로 가득 찬다. 매솟은 미얀마의 미야와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미얀마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태국으로 온다. 현재 약 500만명에 달하는 미얀마인들이 태국을 오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육로로 국경을 넘어 일터로 향한다. 미야와디와 매솟을 오가는 노동자만 하루에 5000명에 육박한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유일한 내륙국가인 라오스도 사반나케트와 훼이싸이 등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무역을 통해 국가 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덕분에 마약 생산과 거래로 악명 높던 메콩강의 골든트라이앵글(라오스·태국·미얀마)과 인도차이나반도는 서로의 국경을 발판 삼아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을 얻게 됐다.태국 아란야프랏텟 국경검문소에서 캄보디아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다.
◆ 국경 넘어 세계로= 태국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무역은 연간 850억바트(약 2조8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국경지대는 비공식적인 거래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국경에 노동과 물자가 몰리면서 각국 정부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특별경제개발구역(SEZ)을 지정하고 입주기업에 법인세를 포함한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특히 태국은 2015년부터 국경지역인 딱주와 사깨우주를 포함한 10곳에 SEZ를 지정해 아세안시장에서의 공급, 생산, 소비 사슬 연계에 발 벗고 나섰다. 태국 정부는 이들을 다시 1차(5곳)와 2차(5곳)로 나누고 각 지역과 경계에 있는 국가들의 특성을 고려해 집중산업 분야를 선정, 세분화했다. 동부경제회랑(EEC)과 아시안하이웨이, 첨단산업을 앞세운 '태국 4.0'과 같은 주요 정부 정책과도 연결해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중동을 넘어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전략을 세웠다. 매솟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송성수 싸이터스 타일랜드 사장은 "주변국이 경제개방을 하고 국경무역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며 "인력과 물자의 이동이 노령화한 태국 경제에는 활력을 불어넣고 경제성장이 더딘 아세안 국가엔 돌파구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가 시작된 후 한국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중국을 언급하며 "아세안 국가들이 포스트차이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