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각을 끌어안는다/김금용

가파른 산 위로 오를수록너럭바위가 팔 뻗쳐 길을 막는다제 안에 각을 부수고잡아당긴다 끌어안는다말 건넨 적 없고 표정도 없지만긴 팔이 쭉 나온다길 잃은 이들을 불러들인다호주머니에서 삐져나오는 카드 영수증연락 두절된 전화번호와 전하지 못한 쪽지,비집고 나올 공간을 찾지 못해귀갓길에 운전대를 잡고 내지르는 비명,다 털어 버리라고 잡아당긴다너럭바위가 각진 모서리를 끌어안는다빗물과 짠 눈물 바람으로 닳도록 두들겨수직과 수평 틈으로 링거 병을 꽂는다진달래와 얼레지꽃, 붉은 병꽃과 손을 잡는다황사에 미세먼지에 앞길이 막막해도도봉산 청계산 관악산 산마다비집고 들어갈 뜨거운 혈을 만든다각이 무너진다진달래 얼레지 산벚꽃 둘레길이 열린다앞길이 뚫린다
 ■ 너럭바위는 그저 바위가 아니다. "도봉산 청계산 관악산 산마다" 하나씩 안겨 있는 너럭바위는 실은 새소리고 물소리고 바람 소리다. 그곳에 잠시라도 앉아 있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리고 또한 알 것이다. 너럭바위는 한여름 산길에 맺힌 달고 시원한 응달이고, 때론 깊은 겨울 사금파리 같은 볕들을 차곡차곡 모아 은근히 지핀 온돌이라는 걸. 그런가 하면 어떤 너럭바위는 봄이 되면 제 몸의 혈 자리마다 "진달래와 얼레지꽃, 붉은 병꽃"을 다복다복 피우는 정원이기도 하다. 너럭바위가 이처럼 다만 바위가 아닌 까닭은 얄궂은 저 "비명" 같은 각(角)들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꼭 끌어안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비에 바람에 세월에 그 모서리들을 스스로 훌훌 털어 버려서가 아닐까. 곧 봄이다. 너럭바위가 둘레길마다 두둥실 떠오를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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