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매달 30만원씩 나라에서 그냥 준다면?

신간 '기본 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새해가 되었으니 행복한 상상을 하나 해보자. 매달 내 통장으로 50만원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이 돈은 아무런 대가성이 없으며, 돈의 사용 역시 철저히 자유에 맡긴다면? 누군가는 저축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 돈을 교육에, 혹은 생활용품 사는 데 쓸 것이다. 어쩌면 이 50만원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자조섞인 유행어를 내뱉지 않도록 할지도 모른다. 국가나 정치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 조건없이 지급하는 일정한 생활비, 이게 바로 '기본소득'이다. 신간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이미 '기본소득'에 대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핀란드를 주목해보자. 핀란드는 올해부터 일자리를 잃어 복지수당을 받는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560유로(약 70만원)를 매달 지급하기로 했다. 수급자들은 돈의 사용처를 보고할 필요도 없고, 구직을 해도 기본소득은 계속 받게 된다. 임시직이나 저임금 일자리를 얻는 대신 실업수당을 받는 쪽을 선택한 실직자들이 기본소득을 계기로 창업 등 새로운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 새로운 실험의 최대 장애물은 진보냐 보수냐의 이데올로기 논쟁보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공짜 돈이 생기면 게을러지고 나태해질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등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본소득에 거부감을 보인다. 영국 런던의 사례는 뜻밖의 결과를 안겨다준다. 2009년 한 자선단체는 노숙인 열세 명에게 3000파운드(약 450만원)씩 나눠줬다. 돈을 가장 필요한 데 쓰라는 게 조건의 전부다. 1년 반이 지났을 때 이중 아홉 명이 거주지를 마련했고, 한 마약중독자는 정원사 자격증 교육을 받았다. 기존 복지제도를 잘 활용하면 되지 굳이 예산이 많이 드는 기본소득을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현재 복지 시스템의 기본 원리는 '선별'과 '잔여'이다. 국가 지원을 받으려면 근로소득,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등 엄격한 자격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등과 같이 도움이 절실해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많다. 근로 수입이 생기면 복지 지원을 끊는 시스템 역시 빈곤층의 탈빈곤 의지를 꺾는다. 2012년에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버지가 수급권 탈락을 피하기 위해 자식에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한 일도 있었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우선 복지의 사각지대가 사라진다. 기본소득 도입의 또 다른 걸림돌은 예산이다. 막대한 재정이 들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팽배하다. 한번 계산해보자. 국민 5000만 명에게 1인당 매달 30만원을 준다면? 필요한 예산은 연간 약 180조원이다. 기본소득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 한국의 총조세부담률은 2014년 기준으로 GDP 대비 약 25%인데, 이를 OECD 평균 총조세부담률인 약 35%로 높이면 약 150조원을 추가로 걷을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우리 사회의 복지 논쟁을 '기본소득'으로 한 단계 끌어올릴 필요는 있다. 이미 이재명 성남시장이 부분적 기본소득인 '청년배당'을 시행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생애주기에 맞춘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제안했다. '최저의 삶'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주기 위한 시도가 한국 사회에서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희망을 잃은 청년들이 기본소득으로 '기회를 재장전(chance-reloaded)'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에리히 프롬의 말도 그의 확신을 뒷받침한다. '소득이 보장된다면 자유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 오준호 지음 / 개마고원 / 1만4000원)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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