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현장] 안전불감증 여전한 대한항공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승객들이 협조를 해줘야 합니다. 오버해서 만취하고 그러면…""미국법(처벌)은 엄격한데 우리는…이번 기회에 법적 보안이 필요합니다" 27일 만취한 기내난동 승객에 대한 부실대응으로 사회적 논란을 빚자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이 한 말이다. 이 자리에서 지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은 "(승무원들의 대처는)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승객을 항공사가 다 막을 수는 없다. 본인이 알아서 절제해주고 그것도 안되면 법으로 강제해달라'는 게 요지였다. 그러면서 '언론이 나서 기내안전 캠페인이라도 벌여주면 좋겠다'고도 했다. 최근 비판 일색의 보도들을 겨냥한 듯한 작심발언이었다. 대한항공은 자기반성부터 했어야 했지만 승객들의 비협조, 법규 부족만을 언급하면서 오히려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난동 피의자인 임모씨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탑승거부 조치를 했다고 했다. 기내난동이 어제오늘일이 아니었지만 임씨가 1호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대한항공이 그동안 미온적인 대처를 해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블랙리스트의 탑승을 거절하겠다고 했으나 "어느 정도 행위를 탑승 거부 대상에 포함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확정하겠다"고만 했다. 부실논란을 부른 승무원들의 대처가 '적절했다'는 평가는 일견 수긍이 간다. 아무리 훈련된 여승무원이라도 30대 남성의 완력을 한 번에 제압하기는 쉽지 않다. 9ㆍ11 테러 사태 직후 도입된 테이저건은 승객과 승무원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때에만 사용하기로 했다. 발사체가 얼굴에 맞을 경우 실명의 위험까지 있기 때문에 사용에 더욱 엄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대한항공은 애초 다른 승객들의 안전 때문에 테이저건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기내승객 진압용으로는 테이저건 사용이 금지돼 있었다. 사실상 거짓 해명을 한 셈이다. 테이저건은 지난 2001년 도입 이후 단 2차례만 사용됐다. 한번은 외국인 엑스트라 기장이 난동승객 제압하기 위해 사용했고, 이륙 전 기내에서 조폭 승객을 제압하기 썼는데, 두 번 다 과잉진압 논란을 빚어 승무원들이 사용을 꺼리는 장비였다. 더구나 있지도 않은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사건 발생 직후 기자가 대한항공에 "임모씨는 기내난동 전력이 있고, 탑승 전 이미 음주상태였는데 왜 사전에 탑승 거부 등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거냐"며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기는 하느냐"고 묻자 "블랙리스트는 있지만, 임모씨가 그 대상이 아니었다"는 석연치 않은 해명을 했다. 항공기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난동의 재발 방지 대책보다 시급한 것은 안전불감증을 없애는 것이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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