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가 JTBC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를 막기 위해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협박했다고 한다. 정권의 안위를 지키고자 세무조사권을 '조자룡의 헌 칼'처럼 쓰려고 했다는 데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이에 대해 국세청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의 말을 믿고 싶다. 그러나 최순실 일당이 세무조사 운운하면서 문제의 재단 설립기금을 모금하는 등 설쳐댄 것은 과거 청와대가 국세청장을 동원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국세청장 발언이 썩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과연 국세청장은 권력기관의 특정업체에 대한 부당한 세무조사 실시 압력을 거부할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그를 임명한 자가 대통령이고, 대통령 또한 자기 말을 고분고분 들을 자를 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한 통속"이라는 얘기다.어느 기업이든 세무조사를 받으면 기업 이미지 손상은 물론 조세범처벌법에 따른 형사처분을 받기도 한다. 이래서 언론사조차도 세무조사를 부담스러워 한다. 물론 오류나 탈루가 있다면 세무조사가 실시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그 부분에 한정돼야 한다. 파리를 잡으려면 파리채로 족하다. 몽둥이를 동원해선 안 된다. 사실 이와 같은 몽둥이 엄포에 얼마나 많은 기업체가 벌벌 떨었던가.이런 점에서 볼 때, 국세청장 자리는 임명제 대신 임기제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본다. 보장 받은 임기 동안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실한 납세자의 권리를 지키며 부당한 정치적 외압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한편, 국세청장 휘하의 말단 세무공무원의 사정은 어떠한가? 이들은 국세청장의 부당한 또는 정당을 가장한 부당한 세무조사명령이라도 수행할 수밖에 없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제57조) 상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세청 공무원 행동강령'에는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법률이 아닌 행동강령이어서 실효성이 거의 없다. 정당함과 부당함을 구별할 기준도 모호하다.가정이긴 하지만, 촛불혁명의 중심에 있는 JTBC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하자. 먼 훗날 이들 세무공무원들에 대한 평가는 어찌 나올까? '권력의 주구(走狗)'로 기록될 게 뻔하다. 권력자의 명령에 아무런 생각 없이 달려가서 기업체 장부를 압수하고 세금을 추징한 '영혼 없는' 세무공무원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그들도 존경받아야 할 인격이 있다. 따라서 국세청장뿐만 아니라 세무공무원에게도 상관의 부당한 세무조사 실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항명권)가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만 국세청장이 살고, 세무공무원들도 명예를 지킬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항명권의 남용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부당한 세무조사를 한 세무공무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법 규정을 고칠 필요가 있다.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은 기업은 피해액에 대해 국세청뿐만 아니라 담당 세무공무원에게도 피해액의 몇 배 정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세무공무원이 이 규정을 근거로 국세청장의 부당한 세무조사 명령을 거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영란법을 근거로 공무원이 부정청탁을 물리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세무조사는 절대로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촛불혁명이 과세관청에게 내린 지엄한 명령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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