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치와 감성이론
감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오늘날 대중들은 탄탄한 서사적 흐름과 논리적 구조에 깊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순간적인 감각과 감정을 선호한다. 현실에서도 잘 쓰여진 글과 연설보다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는 한 장의 사진, 몇 초간의 영상이 더 큰 대중적 파급력을 가지지 않는가. 쉽게 말해서 빈곤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한 권의 책보다 굶주리는 아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사람을 빈곤 문제 해결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상품의 디자인이나 광고가 감성적 요소를 중시하는 경향에서, 정치인의 겉모습이나 인상적인 한마디가 중요해진 현실에서, 그리고 서사의 짜임새보다 이미지의 충격이 강조되는 문화콘텐츠의 유행에서, 감성은 이제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하고 핵심적인 개념으로 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구화한 포스트포디즘 경제체제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모든 것이 감성을 중심으로 재구축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감성론이 인식론을 점점 압도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 사람들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대중문화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이성과 논리가 중시되던 과거와 전혀 다른 상황이다. 따라서 이런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이론과 감성이론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 “감성론의 등장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한국적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연구서다”. 저자는 감성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특히 영화를 통해서 확인하고 검증한다. 영화는 “감성을 생산하고 그 감성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기계”이며, 오늘날 “탈(脫)영토화한 공장으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포스트포디즘 경제체제에서 생산노동을 수행하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서 다루는 영화는 영화적 기법을 사용하는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영상물을 포괄한다. 감성이 중요해진 시대에 영화 자체도 감성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책은 ‘트랜스포머’를 예로 들며, 요즘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영화의 박진성과 내부적 일관성을 무시한 채, 즉 기존의 영화문법을 외면한 채 자의적인 편집을 통한 관객의 흥분과 감성을 극대화하는 디지털 스펙터클의 생산에만 몰두”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고전 영화들이 탄탄한 내러티브와 스토리의 연속성 및 개연성을 중시했던 것과 반대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걸 우선시하는 방향이다. 미디어 또한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기능에서 벗어나 감성을 자극해 대중으로부터 주목받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감성의 효과를 도외시하고서는 어떤 미디어도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저자는 대중영화를 소재로 영화가 이 시대의 감성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또 동시에 영화가 대중의 감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감성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는 어떤지, 그리고 영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가 정치적 실천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등을 분석한다. 텍스트는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일련의 작품을 비롯해 ‘감시자들’, ‘도가니’, ‘해피엔드’ 등이다.(조흡 지음/개마고원/1만7000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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