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덫에 빠진 재계] 총수 9명 국정조사 '초유의 사태'…바이오 산업도 추락

9개 기업 총수들 국정조사 증인 채택 불똥…외국 출장 발묶여, 내년 봄까지 여파 갈수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유인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평소 미국 실리콘밸리를 즐겨 찾는 등 글로벌 경영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발목이 잡혔다. 내년 1월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세계 경제가 유동적인 데다 경영 전면에 선 이후 글로벌시장을 파악하는 데 분초를 다퉈야 하는 상황인데도, 글로벌 행보는커녕 국회와 수사기관을 쳐다봐야 할 처지다.  이 부회장은 당장 다음 달 5일 열리는 최순실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됐다. 여기에 특검까지 고려하면 연말·연초 일정은 최순실 게이트로 퇴색될 수밖에 없다. 역시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경영 스케줄도 녹록치 않다. 12월 중순 해외법인장 회의, 이듬해 1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등 굵직한 행사가 예정돼 있지만 경영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정조사에 서는 모습이 해외 언론에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경쟁사에 약점이 될 수 있다. 

여의도 전경련 회관

최순실 게이트로 국회의 축이 야당으로 쏠리면서 사실상 기업에 우호적인 동력은 상실되고 말았다. 야당이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는 가운데 당장 내달 5일 열리는 국정조사에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진행한 9개 기업 총수들은 진땀을 흘려야 할 처지다. 5공 청문회 때보다 더 많은 재계 총수들이, 그것도 같은 날 국정조사 증인으로 불려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국회 국정조사는 전국에 생중계될 예정이고, 재계 총수들은 의원들의 날 선 질문을 해명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국정감사 때는 건강 문제와 외국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순실 국정조사는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출석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들은 이렇다 할 항변을 하지 못한 채 속만 태우고 있다. A그룹 관계자는 "검찰 공소장을 보면 기업은 피해자로 봐야 하는데 왜 국정조사 첫날부터 불려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순실씨 등 의혹의 핵심 대상자들보다 재계 총수가 먼저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보여주기 '호통 조사'의 징후라는 우려의 시선이다.  그룹 오너들의 국회 조사,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하는 직원들의 심경도 복잡하다. 연말 인사가 어떻게 될지, 조직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B그룹 관계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면서 "인사가 연기된다는 얘기도 있고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얘기도 있고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최순실 리스크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12월에 시작될 예정인 최순실 특검 수사는 최장 120일까지 늘어나 내년 4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 재계 총수 소환은 예정된 수순이고, 소환 일자는 특검 수사 전개에 따라 유동적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최순실 게이트 한파에 한동안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요구서가 가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줄기세포 불법 시술 의혹이 확산하면서 줄기세포 등 바이오 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주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본 차병원(도쿄셀클리닉·TCC)에서 면역세포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 데 이어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줄기세포 불법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21일 관련 바이오주들이 동반 폭락했다. 차병원 계열사인 차바이오텍 주가는 21일 전 거래일보다 8.46% 하락했다. 네이처셀(-9.85%), 홈캐스트(-6.64%), 파미셀(-3.42%) 등 줄기세포 관련 다른 종목 주가도 함께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줄기세포 등 바이오 업종 주가 급락세에 대해 박 대통령의 줄기세포, 각종 미용 시술 의혹에 따라 현 정부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밀던 바이오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바이오신약 등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에 연구개발 비용을 집중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스마트 헬스케어 등 신성장 고부가가치 산업도 전략 투자분야로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뒤에도 줄기세포 등 바이오 분야에 계속 관심을 보였다. 정부는 2014년 8월 줄기세포 상업 임상시험 1상의 면제 범위를 확대하는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또 지난해 12월21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준공식에도 이례적으로 박 대통령이 참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추진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며 "사업의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최순실 게이트로 관련 업계가 발목이 잡히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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