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데이(31일) 직전 주말 맞아 수만명 몰려...유령·마녀 분장한 젊은이들 축제 즐겨...'미국보다 더 미국 같다'....'일상 벗어나 즐기는 축제' vs '정체 모호한 소비성 이벤트' 엇갈려
이태원 할로윈데이 축제.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금보령 기자]"일상을 벗어나 함께 즐기는 축제" vs "국적·정체 모호한 소비성 이벤트". 최근 어린이 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 '할로윈데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어색했던 할로윈데이 축제가 요즘엔 이태원, 신촌, 홍대 앞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외국의 축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정체 불명의 소비성 이벤트'라며 부정적인 이들도 적지 않다. 29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만난 성은희(28)씨는 즐기는 경우다. 성씨는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얼굴에는 진짜처럼 보이는 상처 분장을 했다. 눈에는 일명 ‘귀신렌즈’로 불리는 하얀색 렌즈를 끼고 있었다. 성씨는 “오늘을 위해 3만원을 주고 렌즈를 샀다”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 기꺼이 지불했다”고 말했다. 할로윈데이(Halloween Day)는 31일이지만 이날 저녁 이태원은 주말을 이용해 미리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할로윈데이는 서양 축제의 하나로 유령·마녀 등과 같은 분장을 하는 게 특징이다. 요즘은 유행하는 캐릭터나 영화 속 인물로 분장하기도 한다. 주한 미군과 외국인, 교포나 유학생 등이 즐겨찾는 이태원에서는 2010년을 전후로 할로윈데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면서 지역 상인들을 중심으로 할로윈데이 직전 주말에 각종 이벤트 등 할로윈데이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올 여름 개봉한 영화 ‘수어사이트 스쿼드’ 속 여주인공 할리퀸으로 변신한 사람들이 많았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한 쪽 눈은 빨강, 다른 쪽은 파랑으로 화장한 이들은 할리퀸의 트레이드마크인 야구 배트를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 외에도 미니언즈, 윌리 등 여러 가지 캐릭터로 분장한 이들이 눈에 띄었다. 지나가던 시민 한 명은 이들을 보고 “할로윈을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며 놀라워했다.
할로윈데이 이태원 클럽 파티 [사진=프로스트·비원 제공]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 특성상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와 일반 해적으로 분장한 외국인 남자 두 명은 사람들의 사진 요청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 중 한 명인 앨런 니콜슨(38)씨는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할로윈을 보내는데 너무 재미있다”며 “미국 플로리다에서 보내던 것과 비슷하다”고 얘기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온 매튜 폴(32)씨는 “한국에서 보내는 할로윈이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인데 해가 갈수록 더 많은 한국인들이 할로윈을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부모님 손을 잡고 놀러온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여기저기 구경하는 데 푹 빠졌다. 8살 아들과 7살 딸을 데리고 온 김지선(40)씨는 “아이들이 어릴 때 외국 문화를 접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같이 왔다”며 “다음 주에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에서도 할로윈 행사가 있을 예정인데 오늘 여기서 미리 경험하면 더 즐겁게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가족들끼리 마법사로 분장한 경우도 있었고 호박상자에 들어 있는 사탕을 나눠주는 가족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할로윈을 즐기는 분위기에 대한 생각은 엇갈린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할로윈이 영화 등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서양만의 축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보편적인 행사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국적 불문의 축제가 단순히 상업주의적 목적으로 엔터테인먼트화되면서 소비만 부추긴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많다. 우혜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발간된 '종교문화비평' 399호에서 "한국에서 관찰되는 할로윈 축제는 다른 곳에서도 그러하듯이 종교적 성격이 거의 사라져 더 이상 죽음이나 이에 대한 실존적 공포를 대면하고 극복하는 기재도, 기존질서를 뒤엎고 카오스 상태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의식도 아니다"라며 "오히려 할로윈 축제는 변장을 통한 일시적인 자기변환의 오락성이 극대화되면서 자신의 일상적 스트레스를 방출하고 일탈을 꿈꾸는 기회로 소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그는 이어 " 한국의 할로윈 축제는 여전히 지역공동체의 축제로 기능하고 있는 미국의 할로윈 축제와도, 일본의 가족중심의 이벤트성 축제와도 차이를 보이면서 아직은 정체가 모호한 축제로 남아있다"며 "한국의 할로윈 축제는 오히려 상업주의의 좋은 타깃이 되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할로윈데이 축제. 아시아경제DB.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한편 이날 이태원 곳곳에선 사람들이 많이 몰린 탓인지 공공 질서를 훼손하는 행동이 다수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학생 홍모(25)씨는 “술집 등 가게들이 뿌린 전단지와 휴지들이 바닥에 가득해 보기 안 좋다”며 “심지어 술병까지 굴러다니는데 혹시 누가 밟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무단횡단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경찰들은 해밀턴 호텔 앞 삼거리에서 교통 지도를 실시했지만 막무가내로 뛰는 시민들을 막을 수 없었다. 횡단보도 신호등의 초록불이 빨간불로 바뀔 때쯤 경찰은 시민들에게 “도로 위로 올라가 주세요”라고 얘기했지만 몇몇 시민들은 “왜 못 지나가게 막냐”며 항의했다. 이에 경찰은 “죄송합니다. 신호가 끊겨서요”라며 “도로 위로 올라가 주세요”란 말을 되풀이해야 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안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칸에 들어가 의상을 갈아입거나 화장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연(29)씨는 “화장실 들어가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짜증났다”며 “다 같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를 개인장소인 것처럼 차지한 사람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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