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에도 숨찬 개헌 셈법…대권 주자들 바쁘다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개헌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정치권의 예비 대선 주자들을 둘러싼 기상도가 엇갈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 4년간 부인해 온 '개헌 카드'를 갑자기 꺼내 들면서 향후 개헌 정국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거대 야당들이 반발하면서 '박근혜표 개헌'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이지만, 최순실 게이트 정국 속에서도 개헌의 소용돌이는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 아시아경제DB

◆'흐림' 문재인·안철수, 이슈 주도권 놓칠 가능성=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 주도의 개헌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 야권 주요 대선 주자들은 일단 '흐림'이다. 개헌을 이슈로 내년 대선 정국을 꾸리려던 계획이 뒤틀어진 탓이다. 이슈를 선점당한 데다,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는 개헌을 무조건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력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에게는 대선가도의 블랙홀이 된 셈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도 미묘한 온도차는 존재한다. 문 전 대표는 그간 개헌을 전면 반대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는 4년 중임제를, 지난해에는 지방분권형 개헌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의 개헌 추진 기미가 엿보이자 다음 정권에서의 개헌을 역제안했다. 이런 문 전 대표가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법 개정을 전제로, 개헌 정국의 흐름을 되돌리려고 한다면 '흐리다 갬'으로 반전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반면 안 전 대표는 당분간 '흐림'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양당 구도를 종식시키기 위한 전향적 개헌에는 내심 찬성하면서도 표면적으론 "개헌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번 박 대통령의 제안에도 "우병우ㆍ최순실 사태를 덮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반박할 새로운 이슈 제기에 주저하는 모양새다. 개헌을 고리로 한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의 '제3지대론'에도 회의적이라 쉽게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지방분권형 개헌을 외쳐 온 야권의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잠룡들도 박근혜표 개헌이란 늪에 점차 빠져드는 분위기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이를 정략적 꼼수로 규정한 상태다. 이들은 향후 개헌 정국에서 동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 아시아경제DB

◆'갬' 손학규·김종인, 개헌 매개로 세력 키울 수도= 반면 최근 민주당을 이탈해 중립지대에 나선 손 전 대표에게는 호재가 됐다. '흐리다 맑음'이다. 제6공화국의 사망을 선언한 손 전 대표는 개헌을 매개로 향후 행보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야권 주자들이 여권의 활발한 개헌 논의를 애써 무시하는 동안 홀로 개헌 정국에 적극 동참하면서, 세력을 키울 기회까지 잡게 된 것이다. 이 밖에 개헌 추진 의원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 전 대표와 같은 당 김부겸 의원은 완곡한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개헌 정국에 동참할 채비를 갖췄다. '갬'이다. 김 전 대표는 야권에선 잠재적 '킹메이커' 혹은 '킹' 후보로 꼽힌다. 김 의원도 대선 출마를 사실상 선언한 상태다. 다만 이들이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향후 닥칠지 모르는 '개헌 역풍'을 비켜갈 수 있다. 여권 대선 주자들의 기상도도 엇갈린다. "적극 환영한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를 비롯해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일제히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개헌을 정파적 이해를 넘는 미래 지향적 가치로 포장해 향후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맑음'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 사진=연합뉴스

◆'화창' 반기문, 친박과 이해관계 맞아 최대 수혜자로=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여권 잠룡으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란 얘기가 돈다. 친박(친박근혜)이 반기문 대통령, 친박 책임총리의 이원집정부제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장 화창한 날씨를 드러냈다. 반 총장은 퇴임하는 내년 초까지 미국 뉴욕에 머물면서 조용히 지켜볼 예정이라 개헌 정국을 둘러싼 소용돌이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는 소리도 듣는다.반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권력을 나눠먹기하는 개헌을 추진할 때 강력한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라며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일어나 관심을 모은다. 개헌 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여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소신있는 목소리를 냈지만 '흐림'이 아닌 '흐리다 맑음'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편 정치권은 향후 개헌정국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도입 등 권력 구조 개편 쪽으로 치달을 경우, 권력 분점을 위한 정치 세력 간 이합집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여야 구도 붕괴와 정계 개편으로 이어질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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