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신동빈 회장(61)에 대한 구속 수사 시도가 불발되며 지난 3개월여 롯데그룹 비리를 겨눠온 검찰 칼 끝도 초라하게 됐다. 배임·횡령 등 법리 다툼의 소지가 큰 혐의에 집중한 검찰로서는 결과만 두고 보면 장고 끝 악수를 둔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9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신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은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함에도 피의자(신 회장)의 변명에만 기초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면서 “그간 재벌수사와의 형평성에 반하고, 총수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며 향후 대기업 비리 수사를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성토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신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을 다녀간 지 꼬박 엿새 만인 지난 26일 500억원대 횡령, 1250억원대 배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횡령은 총수일가가 그룹 다수 계열사에서 무늬만 ‘등기이사’로 급여 빼먹기를 했다는 내용, 배임은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및 부실 계열사 자본지원으로 계열사들이 손실을 감내할 상황에 직면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책임 경영 명목을 빌어 다수 계열사 이사를 겸직하는 것은 국내 대기업집단 경영 풍토에서 비단 롯데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경영활동의 실질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 자르듯 하기 쉽지 않고, 대주주가 직접 경영하는 경우 총수일가 내에서도 명목상의 등기이사에게 온전히 화살이 향해도 되는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배임죄 적용은 해묵은 논란거리다. 기업 경영은 원칙적으로 위험이 뒤따르기에 판례도 신중한 경영상 판단이 예측을 빗나가 손해로 돌아오는 경우까지 처벌하지는 않는다. 결국 제반 사정에 비춰 총수일가가 재산상 이익을 노렸다고 인정할 만큼 엄격한 경우라야 인정되는 죄다. ‘털어서 안 나오는 기업 없다’는 배임·횡령죄를 국내 재계 5위에 덧씌우고 마는 데 그치면서 검찰은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하물며 ‘형제의 난’에서 촉발된 롯데그룹 수사는 부자지간, 형제지간에 서로 책임을 떠밀어 온 측면도 있는 마당에, 횡령에선 ‘별산제 가족’, 배임에선 ‘화목한(?) 가족’이라는 독특한 형사책임 계산법을 썼다. 검찰은 조만간 신 회장에 대한 재청구 여부를 포함 총수일가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확정한 뒤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100일 넘게 이어온 수사를 사실상 끝낼 전망이다. 법조계는 검찰이 신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결국 케미칼 소송사기 연루 의혹, 일본 계열사 통행세 의혹, 홈쇼핑·건설 비자금·로비 의혹 등 진행 중인 수사는 물론 수사 초기부터 주목받던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 등은 실체규명에서 멀어지고 있다. 검찰이 제때 메스를 들이댔더라면 수사 결과가 초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즈음해 이뤄질 총수일가에 대한 사법처리 가운데 신격호 총괄회장(94)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불법이전에 따른 탈세 혐의는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74·구속기소)처럼 먼저 잡혔거나, 서미경(56)씨처럼 아예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들이 공소시효 등의 문제로 먼저 기소된 데서 보듯 10년에 걸친 범죄다. 기왕지사 늦었다면 롯데의 자정노력에 기댄 후가 오히려 검찰 안팎 여론은 유리했을 수도 있다.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롯데그룹이 당초 예정대로 호텔롯데를 6월 말 상장했더라면 일본 롯데 지배력은 3분의 2 수준(64%)까지 떨어질 전망이었다. 최소한 한국·일본 롯데 경영권이 검찰 수사에 대한 ‘방패’가 되어줄 명분은 덜고 갔을 수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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