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김영환(27ㆍ가명)씨는 군 제대로 지난 1학기에 복학해 대기업 하반기 공채에 도전했다. 서류와 필기를 통과해 임원면접을 앞둔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최종 입사가 결정되면 내년 1월 한 달간의 교육을 거쳐 2월에 정식 입사하게 된다. 이수학점이 부족해 이번 학기와 겨울학기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김씨로서는 조기취업만 된다면 취업계를 내고 출석을 인정받아 졸업할 수 있게 된다.문제는 오는 28일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취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업을 빠지는 행위는 '부정청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렵사리 취업을 했더라도 남은 학기를 모두 채우지 못하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김영란법이 가뜩이나 취업난에 허덕이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족쇄가 되는 셈이다. 김씨는 "졸업을 해야 입사 자격요건이 되는데 졸업을 하기 위해 출석하면 회사의 신입사원 교육에 불참하게 돼 취업이 수포로 돌아간다"며 "김영란법이 취준생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일부 대학은 학칙을 개정해 취업으로 인한 결석을 공식 인정해 주기로 했지만, 연세대 등 일부 대학은 인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대학가에 때 아닌 김영란법 비상이 걸렸다.'동네 마당발'로 유명한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박희영(55ㆍ가명)씨도 김영란법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파트 입주자인 박씨는 주변의 권유로 통장에 선출됐는데 구청에서 통장협의회 회의를 가지면서 김영란법에 자신도 대상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수십 년간 일가친척과 동호회, 지인의 경조사 때마다 통 큰 부조를 했는데 정작 자신의 자녀 결혼식에서는 10만원 이상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그동안 뿌린 게 얼마인데"라는 현실적인 셈을 하면서도 통장을 관둘지 고민하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기영(60ㆍ가명)씨는 일손이 더 바빠졌다. 최근 젊은 직장인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점심 밥값을 더치페이로 하면서 각자 카드로 결제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직원도 없이 부부가 꾸려가는 음식점에서 주문받고 음식 내는 일도 버거운데 결제하는 시간이 더욱 지체되고 있다. 이씨는 "1시간 남짓인 점심시간은 회전율을 높이는 게 중요한데 1팀에 4명이 6000원짜리 음식을 먹고 모두 카드를 내다 보니 결제하고 영수증을 발급하는 시간만 5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결제기를 여러 대 구비하든 카운터전담 직원을 뽑든 이래저래 비용만 추가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김영란법의 시행이 코앞에 닥치면서 사회 곳곳에서 김영란법으로 인한 혼란과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 김영란법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제정돼 국민들에게도 호응을 얻었지만 정작 김영란법과 무관해 보이는 일반인과 학생들이 이 법의 취지와 다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영란법 적용대상만 400만명이지만 실제로는 전 국민에 해당된다는 말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란법은 사실상 공무원과 공익성을 띤 단체와 기업, 세금이나 공적기금 등의 지원을 받는 기관과 기업의 종사자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자생단체이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직간접 지원을 받는 새마을부녀회, 통장협의회는 물론 시골마을 이장도 포함된다. 문제는 권익위원회가 아직도 명확한 대상과 기준 등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지역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김영란법 설명회에서 "마을 이장도 이번 김영란법의 대상자인가"라는 질문에 권익위 담당자의 답변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계 관계자는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지키고 싶어도 법 적용과 유권 해석에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법을 지키지 않아서 처벌받는 사례와 판례가 쌓이는 과정에서 피해자만 양산할 것"이라고 말했다.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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