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力은 國力]박현주 SC제일銀 부행장 '성공 강박증 버려라'

W프런티어 5기<2>'생계형 맞벌이'라는 진솔한 고백일벌레였지만 육아 위해 사표도…여성들의 완벽주의 성향 탓에 중간관리자로 성장하는 데 한계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사진=윤동주 기자] "생계형 맞벌이였다."놀랬다. 경력단절을 극복한 비결에 대해 당연히 "(단절 기간에도) 틈틈이 공부하며 준비했다"란 모범 답안을 내놓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 나왔다. "당시 남편이 시간 강사였다. 꼭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자신 스스로를 생계형 맞벌이로 정의했다. 오랜 기간 인생노트에 가정, 자녀, 일, 단 3개만 적혀 있었다는 고백도 스스럼없이 했다. 여성 리더들이 좀처럼 내뱉지 않는 그 말에서 진심과 노력이 느껴졌다. 박현주 SC제일은행 부행장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일벌레에게도 위기는 온다= 박 부행장은 은행 내 손꼽히는 일벌레다. 한 번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도 "그 친구, 정말 일 열심히 한다"고 치켜세울 정도다. 한결같이 일에 대한 열정을 뿜어내자 조직 내서도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2005년 한국 트랜젝션뱅킹부 창립 멤버로 SC제일은행에 입행해 상품팀을 이끈 그는 2007년 런던과 홍콩에서 근무하며 트랜젝션뱅킹 유럽 지역본부 및 동북아 지역본부의 요직을 꿰찼다. 2012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핵심업무인 트랜잭션뱅킹부와 커머셜기업금융을 이끌며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그렇다고 박 부행장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던 SC(스탠다드차타드) 영국 본사로 파견 나간 2007년이 위기였다. "본사로 발탁된 은행 내 첫 여성 1호라는 타이틀을 따며 영국에 갔다. 하지만 본사 사무실을 가니 일거리가 없었다. 사무실 책상에서 고개를 들면 다들 바쁘게 일했는데, 혼자 할 일 없이 방황하는 것 같아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월급 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회사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당시 방황하던 그를 잡아 준 것은 영국인 보스였다. "여기 워킹홀리데이 왔다고 여기며 놀아라. 일은 자연스럽게 주어진다"는 영국인 보스의 말을 되새기며 자신을 다독였다. 꼭 본사 발령 3개월 후 새 프로젝트의 팀장이란 직책을 받았다. 욕심이 났다. 그는 사무실 한 층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팀원들과 열정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기대 목표치의 120%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로 일에 몰두했다. '얼마나 갈까' 시큰둥하던 팀원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같이하자며 신뢰를 보냈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너의 러닝 커브(Learning Curveㆍ학습 곡선)가 인상적이다. 저렇게 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받았다."박 부행장은 "이때 경력도 '나이키 커브(Nike Curve)'의 연속이란 걸 배웠다"고 했다. 나이키 커브란 단기간 빠르게 침체된 경기가 완만하게 상승하는 모양을 지칭한 것으로,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의 로고를 따 이름이 붙여진 경제 용어다.◆육아, 난공불락‥일ㆍ가정 갈림길서 고민하기도= 워킹맘의 절대 고민인 육아는 박 부행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누구보다도 좋아했지만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을 경험하기도 했다. 결혼 후 긴 시간을 기다려 찾아온 아들 때문이었다.너무 약했던 아들을 보자 우선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10개월간 매달렸다. 박 부행장은 "10개월간 정말 일하는 것처럼 아이에게만 전력을 다했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분리불안 없이 지금까지 바르게 잘 크고 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멘티의 충고, 또 다른 변환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떨쳐내야= 2013년 어느 날. 일벌레였던 그에게 또 한 번의 변환점이 생겼다. "너무 일만 하고 지쳐 보인다. 전무님이 좀 반짝반짝 빛나고 행복해 보여야 '빨리 승진해야지'란 꿈을 꿀 텐데…. 더 높이 올라가고 싶지 않다." 아끼는 여성 후배가 툭 던진 그 말이 계기가 됐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큰 종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박 부행장은 "그때서야 시니어의 역할이 단순히 경영목표 달성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일 외의 분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요즘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다양성과 포용성' 문화의 확대다. 이는 전 세계 70여개국에 진출한 SC그룹의 글로벌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박 부행장은 "성별, 문화, 세대별 차이 등을 모두 수용해서 모든 사람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다"며 "융합ㆍ포용의 문화는 4차 산업혁명과도 잘 맞는 개념이기도 하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4차 산업혁명 시대 은행업의 미래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박 부행장은 "4차 산업혁명이 오더라도 은행이 다년간 쌓은 신뢰의 영역과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관계의 영역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핀테크(금융+기술) 등 진보적인 기술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강화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에게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도전하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여성들은 대체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어 100% 이상 준비될 때만 새로운 도전에 '세이 예스(Say Yes)' 한다. 반면 남성들은 능력의 80%만 돼도 세이 예스를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지만 여전히 중간관리자가 부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패해도 툭툭 털고 일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면 문제없으니 컨피던스(confidenceㆍ확신)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박현주 부행장은?▲1990년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졸업 ▲1998년 와튼스쿨 MBA 졸업 ▲1998년 한국 씨티은행 글로벌 트랜잭션서비스 부장 ▲2000년 네오플럭스캐피탈 이사 ▲2003년 한국 HSBC 이사 ▲2005년 SC(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 트랜잭션뱅킹 이사대우 ▲2007년 SC 유럽 트랜잭션뱅킹 이사대우 ▲2009년 SC 동북아시아 트랜잭션뱅킹 상무 ▲2012년 한국SC 트랜잭션뱅킹본부 전무 ▲2015년 11월 한국SC 커머셜기업금융총괄본부 전무 ▲2016년 4월 SC제일은행 부행장보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사진=윤동주 기자 doso7@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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