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기자
조선말의 요녀 '나합'
영산포 중에서도 내영산 마을 건너 삼영리 포구 부근에 양지홍(梁只洪)이란 소녀가 살았다. 양지홍이 태어난 해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녀가 태어날 때 이서구(1754-1825)가 전라감사로 있었다는 일화를 고려하여 따져보면 1820년(순조20년 을유년) 경이었을 것이다. 실학자 이서구는 천문지리에도 밝았다. 어느 날 점을 쳤는데 나주 삼영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혹시 거기 막 새로 출생한 아이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면 나라를 결딴낼 만하고, 계집이라면 세상을 시끄럽게 하겠구먼.” 나주로 달려 알아보고 온 사람이 “홍어요리 주막을 하는 양씨집에 여아 하나가 태어났다”고 전하니, 그는 “다행히 남자가 아니어서 아이 하나 벨 일을 면했구나”라고 말했다. 전라감사는 다시 사람을 보내 아이가 홍어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오직 홍어’라는 뜻으로 ‘지홍(只洪)’이란 이름을 내려주도록 하라고 했다. 이서구의 혜안은 지금도 입에 오르내린다. 그는 현재의 논산 훈련소 부근의 죽평리를 지나면서 “이곳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지형”이라고 지적했는데, 그뒤 이곳은 닭이 알을 품듯 아들들이 번창한다는 의미로 구자곡(아홉아들 골짜기, 九子谷)이라 불렸다. 죽평리에는 대한민국의 아들들이 몰려와서 열심히 군사훈련을 받고 있으니 틀리지 않은 셈이다. 그건 그렇고, 달사(達士) 이서구가 이름까지 지어준 '위험한 여자' 지홍.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홍이는 홍어만 만지고 살기에는 너무 예뻤다.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