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1.1㎞의 '본질 여행'

4세대 방사광가속기 그 현장을 가다

▲포항가속기연구소에 설치돼 있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 1.1km의 직선으로 이뤄져 있다.

[포항=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물체를 보는 것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달빛에서 보면 운치는 있겠는데 사물이 흐릿해 보입니다. 반면 햇빛에서 같은 물체를 보면 달빛보다 뚜렷하게 사물의 본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말에 포항공대 가속기연구소를 다녀왔습니다. 이곳에는 직선 길이 1100m에 이르는 4세대 방사광기속기가 있습니다. 방사광가속기는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한 전자에서 나오는 X-선으로 물질의 미세구조(본질)를 분석하는 거대 실험 장치입니다. 3세대는 X-선으로, 4세대는 3세대보다 1억 배 밝은 X-선 레이저로 물질을 관찰합니다. 물질의 미세구조와 현상을 나노·펨토초(10의-15승) 단위까지 관찰이 가능합니다. 3세대는 보통 햇빛의 100억 배·피코(10의-12승)초 관측이 가능하고 4세대는 햇빛의 무려 100경(京)배·펨초토 관측이 가능합니다. 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그 길이에서 부터 직선 구조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선형가속기, 삽입장치, 저장링, 빔라인, 전자를 버리는 장치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유전자레이저 발진을 위한 전자 생성기인 광음극 전자총에서 시작된 전자의 여행이 1.1㎞를 가면서 그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죠.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정밀도 면에서도 주목됩니다. 720m 길이 가속장치 전자궤도 는 2μm 이하 정밀도를 자랑합니다. 1.1㎞ 건물의 바닥오차는 ±5㎜에 이릅니다. 삽입장치 건물(1만5000㎥) 온도는 25±0.1도 맞춰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최적의 본질을 찾기 위한 정밀 장치들입니다. 전자총에서부터 전자를 버리는 곳까지 1.1㎞에 이르는 거리를 걸으면서 지켜보는 동안 끝없이 이어진 장치를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속관의 경우 구리로 이뤄져 있는데 총 180톤의 구리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1.1㎞의 여행을 거친 전자는 마침내 그 임무를 종료합니다. 전자가 버려지는 곳이 있는데 이 장비가 무려 5억 원에 이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쓰레기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광음극 전자총은 4세대 가속기 시작지점입니다. 자유전자레이저 발진을 위한 전자 생성기입니다. 전자총에서 만들어진 전자는 가속관에서 빛의 속도에 근접하게 가속됩니다. 가속관을 통과한 전자는 이어 삽입장치를 통과합니다. 삽입장치는 X-선 자유전자레이저를 발생시키는 핵심장치입니다. 공동형 전자빔위치측정기는 삽입장치 구간을 지나는 전자빔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합니다.

▲고인수 단장이 운전실에서 방사광 가속기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고인수 4세대 방사광가속기 추진단장은 "가속기는 기초과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장치"라며 "우리나라 기초과학 분야의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가속기를 만드는데 총 사업비 4298억 원(국고 4038억, 지자체 260억)이 투입됐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건설된 시설입니다. 김도연 포항공대 총장은 "이번 사업에는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아주 소중한 장치"라며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겠다는 기초과학자도 많았습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 이용자 698명 중 80%(558명)가 이용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김빛내리, 현택환, 유룡, 노태원, 김광수 교수 등 국가과학자들이 많았습니다.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이용하면 화학과 물리, 생명의학 분야에서 큰 발전이 기대됩니다. 생명분야에서는 세포막 등 3세대 가속기로는 분석이 어려운 질환 단백질을 실시간·초고화질 분석을 통해 신약개발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3세대 가속기와 비교했을 때 100배 단축됩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초고속 화학반응으로 연구가 어려웠던 광합성현상 등을 원자수준에서 실시간 관찰이 가능해 미래 청정에너지원 개발에 나설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미세소자, 화학촉매반응 등에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1.1㎞의 '본질 여행'을 통해 우리나라 과학은 발전하고 이를 통한 미래 먹거리 창출이 기대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쓰레기통 중 하나이다. 1.1km를 달려온 전자는 이곳에 버려진다. 약 5억 원으로 만들었다.

포항=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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