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올해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과거 상황이 데자뷰처럼 재연되고 있다. 노동계는 올해보다 66% 인상된 '시급 1만원'을 내년 최저임금으로 제시하고, 정치인들은 공공연히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법정심의기한(6.28)을 한참 넘겨 최저임금 심의가 이어지는 것 역시 그렇다.최근 우리 최저임금은 너무 빠르게 오르고, 절대적 수준도 높아졌다. 이로 인해 영세·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취약계층의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저임근로자 보호 측면에서 그동안 최저임금이 기여한 부분을 고려하더라도 부작용이 너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최저임금은 2000년 1600원에서 2016년 6030원으로 277% 증가했으며, 인상 속도는 연평균 8.6%로 같은 기간 임금상승률(4.9%)과 물가상승률(2.5%)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인상속도는 일부 동구권 국가와 함께 국제적으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수준이다. 고도성장기라면 이러한 8%대의 최저임금 인상을 감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률이 3% 전후에 머물러 있는 최근 우리 경제상황에서는 노동계가 요구하는 66% 인상은커녕 최근의 7~8% 수준 최저임금 인상도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가파른 인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을 고려한 최저임금 수준도 OECD 21개국 중 8위에 올라섰다. 우리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협소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지금 수준으로도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특히 최저임금 근로자의 98%가 300인 미만 기업에, 87%가 30인 미만 영세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또다시 고율 최저임금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영세·중소기업을 범법자로 내몰고 취약계층의 일자리 상실을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생계형 소상공인과 영세기업은 인건비 비중이 높고, 해당 사업장 근로자가 가진 기술도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가 오를 경우 기존 근로자를 가족구성원으로 대체하거나 이마저도 어렵다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을 매년 고율 인상한 노동계가 '최저임금조차 줄 수 없는 곳은 폐업하는 것이 맞다'라고 반응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또한 우리 최저임금제도는 불합리한 산입범위로 인해 근로자들이 당연히 임금이라고 생각하는 정기상여금 및 일부 수당이 최저임금 산정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고율 인상, 협소한 산입범위로 인해 일부 고임근로자까지 최저임금 인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매달 300만원 이상 받는 근로자들까지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자동적으로 임금을 올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왜 근로자가 고정적으로 받는 임금의 상당부분을 최저임금 계산에서 제외하는 것인가? 저임금근로자의 최저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로 인해 고임근로자의 임금까지 올려줘야 하는 현실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최저임금의 취지는 충분한 생활보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임금 단신 근로자의 최저생계보장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임금을 시장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법이 개입해서 강제로 그 최저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정해지면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하더라도 이를 위반할 수 없다. 최저임금이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날이 악화되는 경영여건과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초래되고 있는 부작용을 감안하면 당분간 최저임금은 반드시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보다 합리적인 제도 운영을 위한 지역별, 업종별 최저임금제 도입과 산입범위 개선이 시급하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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