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수 국제부 선임기자
일본 기업들의 승계 문제가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58) 사장이 60세가 되면 은퇴하겠다던 계획은 접고 후계자로 지목했던 인도 출신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을 지난달 22일 퇴임시킨 뒤의 일이다. 아로라 부사장은 구글 임원으로 일하다 손 사장의 권유에 따라 2014년 9월 소프트뱅크로 자리를 옮겼다. 손 사장은 지난해 6월 아로라를 대표이사 부사장에 임명하기 전 그가 자기의 "후계자 후보로 가장 중요한 인재"라고 발언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손 사장이 60세에 이르는 내년 8월 물러나기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기업 상당수는 노령의 인물이 소유ㆍ경영하고 있다. 유니클로를 세계적인 중저가 의류 브랜드로 키운 패스트리테일링그룹의 야나이 다다시(柳井正·67) 회장은 "65세에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64세 때인 2013년 10월 이를 철회했다.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은퇴할 수 없다는 것이다.신용조사업체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사장 가운데 23%가 70대 이상이다. 60대 이상으로 치면 60%까지 치솟는다. 게다가 일본에는 창업 100년 이상 된 이른바 '백년기업'이 많다. 백년기업 사장들 중 치매에 걸리는 이가 속출하기 시작해 관련 상담이 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JP모건증권은 창업주가 이끄는 일본 기업들이 향후 5~10년 뒤 맞닥뜨릴 가장 큰 문제로 기업 승계를 꼽았다. 창업주들이 연로해 가는데 후계 문제가 명확히 매듭지어지지 않을 경우 투자자에게 큰 리스크로 작용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고령의 창업주에게 회사는 자기의 일부일지 모른다. 애써 키운 기업이니 나 아닌 다른 이에게 넘기기 아까울 듯도 하다. 그만큼 후계자를 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창업주가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다음 세대로 바통을 넘기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는 더러운 집안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난해 2월 오츠카가구 창업주 오츠카 가츠히사(大塚勝久·72)는 사장인 딸 오츠카 구미코(大塚久美子)를 해임하려 들었다. 그는 주총 위임장 쟁탈전에 나섰으나 결국 딸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집안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은 물론이다. 우리도 비슷한 이와 이전투구를 심심찮게 봐왔다. 지난 3월 소매체인 세븐앤드아이의 스즈키 도시후미(鈴木敏文·84)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자기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사카 류이치(井阪隆一) 사장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무산시킨 인물이 미국 헤지펀드 서드포인트의 행동주의 투자자 댄 롭 펀드매니저다. 그는 스즈키 회장에게 '만성적인 건강 문제'가 있으며 스즈키 회장이 차남을 후계자로 지명할 계획이라고 까발렸다. 4월 이사회에서 스즈키 회장은 자기 계획을 관철시키는 데 실패해 물러나야 했다. '핏줄'에게 소유권과 경영권을 동시에 물려주려다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대주주의 권리 승계와 대주주 일가의 직접 경영은 별개 문제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 수장들은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더라도 엄격하고 오랜 훈련부터 거치도록 조치한다. 기업 승계 여부는 이런 검증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자식이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고 초고속으로 임원까지 승진시키진 않는다. 창업주가 늙어가도 기업은 젊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려면 투명한 기업 승계 과정에서 능력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미 경제 격주간지 포천 선정 '글로벌 100대 기업' 중 창업주 일가가 경영에 직접 나서는 경우는 겨우 10여 곳이다.이진수 국제부 선임기자 commu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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