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가둔 권력…불안한 평양

10일 오전 평양시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 경축 군중대회 및 군중시위(민간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당 깃발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36년 만에 치러진 북한 노동당 제7차 대회가 사흘간에 일정을 마치고 9일 폐막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마지막날 회의에서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되며 사실상 '김정은 시대'의 막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 당 대회에서 보여준 김 제1위원장의 모습은 '김일성 따라하기'에 머무르는 등 앞으로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 속에서 불안한 권력자의 모습을 예고했다.◆할아버지에 기댄 1인자=김 제1위원장은 이번 당 대회에서 '최고 수위'의 자리에 올랐다. 조선중앙통신이 10일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는 (9일)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인민들의 한결같은 의사와 염원을 반영해 김정은 동지를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할 것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이 노동당 위원장에 오른 것은 당의 최고 영도자로 등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최고수위' 정통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기 시대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새로운 직책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최고 수위'의 자리가 권력의 기반을 공고히 해 주지는 않는다. 김 제1위원장은 당 대회 내내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통해 '준비되지 않은' 권력자의 모습을 보였다. 당 대회 3일째인 8일 오후 북한 매체들은 김 제1위원장의 당 중앙위원회 사업 총화(결산) 보고장면을 녹화 방송했다. 양복에 안경, 넥타이 차임으로 행사장 연단에 선 김 제1위원장의 모습은 예전 김일성 주석의 모습과 닮았다. 김 주석은 평소에 양복을 즐겨 입었다. 김 주석은 1980년 10월 열린 6차 당 대회 때는 인민복을 입었지만, 4차 당 대회에는 양복을 착용했다. 젊은 시절의 김 주석처럼 김 제1위원장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뿔테 안경을 착용했다. 배를 내밀고 걷는 모습도 생전 김 주석과 비슷하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은 사업 총화 보고에서 "사회주의 위업을 완성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온 사회를 김일성ㆍ김정일주의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6차 당대회 당시에는 '온 사회를 주체 사상화'하겠다고 이야기하며 이를 위해 사상ㆍ기술ㆍ문화 등 3대 혁명을 철저히 관철하자고 했다"며 "결국 김정은도 선대의 모든 대내외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항구적 핵보유국 VS 세계적 비핵화=김 제1위원장은 6∼7일 이틀에 걸쳐 열린 노동당 7차 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결산)보고에서 핵보유국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우리 당의 새로운 (핵-경제) 병진로선은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리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로선"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의 거센 압박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 등을 활용한 미국의 추가적인 대북 압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김 제1위원장은 이어 "우리 공화국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 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리행(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처럼 김 제1위원장은 핵보유국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세계 비핵화라는 개념과 핵보유국 개념이 합쳐지면 북한이 앞으로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만 한다는 의미로까지 해석된다"며 "역시 비핵화와는 전혀 거리가 있는 언급"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북한이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개발과 우리를 직접 겨냥한 도발 위협을 지속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와 협상을 거론한 것은 전혀 진정성이 없는 선전공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中에 인정받지 못한 권력=중국은 이번 당 대회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다만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북중 관계 발전을 기원하는 축전을 발송한 사실을 인민일보가 1면을 통해 7일 공개했다. 하지만 축전에서 김정은 이름은 거명되지 않아 중국 측의 관계개선 메시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대북 전문가들의 관측이다.이는 이미 예상됐던 모습이다. 올해 중국의 만류에도 강행한 4차 핵실험 이후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는 옛 말이 된 지 오래다. 이번 당 대회 전 북한의 추가 핵실험 조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시 주석은 지난 달 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 교류ㆍ신뢰구축회의'(CICA) 외교장관 회의 축사에서 "(한)반도에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고했다.중국은 당 대회 마지막 날에서야 시 주석의 축전을 보냈다. 하지만 시 주석이 김 제1위원장에게 보낸 '축전' 내용에는 앞서 조선중앙통신 보도와 달리 '김정은 동지' 라는 호칭은 생략돼 있는 것으로 인민일보 등이 확인했다. 또 시 주석은 축전에서 "중국 당과 정부는 중조 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을 방문하지 못한 김 제1위원장에게 이 말처럼 공허한 말은 없다고 대북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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