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위축' 비판여론.."모법개정은 정치권서 결정할 문제"청와대·권익위·새누리당 사전조율했을 가능성 커
(사진 제공 : 권익위)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한마디로 '난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9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자 사회 각계각층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 경기가 더욱 악화하지 않겠느냐는 비판론에 권익위는 "모(母)법 개정은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공을 정치권으로 넘겼다. 곽형석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은 1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1년이 넘는 긴 시행령 안(案) 마련 기간 경제적 상황, 이해 관계자들의 요구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순 없었다"며 "비판 여론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진통이라고 보고 싶다"고 밝혔다. 권익위가 김영란법 시행령 안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3월 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1년2개월 만이다. 통상 시행령은 입법 후 3~6개월이면 만들어진다. 권익위가 내놓은 시행령 안은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03년 마련된 공무원행동강령과 비교해 변동이 없다. 경조사비는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두 배 올렸다. 선물은 당초에는 아예 금지됐다가 이번에 허용하면서 상한액을 5만원으로 정했다.
권익위는 9일 김영란법 시행령 안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7월 3일부터 13일까지 설문조사한 결과 일반국민과 공직자의 경우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5만원 내지 10만원 기준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다수였다"며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은 일반 국민에 비해 다소 높은 금액 기준의 응답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자료 제공 : 권익위)
일반적인 국민들의 인식 수준을 고려했다는 권익위 설명에 경제계는 싸늘했다. 상한액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이다. 국내 농·축·수산물 생산자들과 유통·외식업계 등은 물론 일부 언론에서도 내수 위축과 편법 발생 가능성을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일각에선 시행령 안에 대해 권익위가 박근혜 대통령의 시그널도 무시한 채 융통성 없이 김영란법 입법 취지만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묻는 질문에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 발언 이후 시행령 마련을 서두른 권익위가 청와대에 반(反)해 독자 행동을 했을리는 만무하다. 더군다나 '박정희 장학생' 출신인 성영훈 권익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가신(家臣) 그룹으로 통한다. 성 위원장은 학창 시절 정수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 등을 거쳤다. ▶관련기사 이에 청와대와 권익위, 새누리당까지 서로 사전조율을 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김영란법 시행령 안 발표 이전부터 내수 위축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국회 차원의 법률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권익위로서는 모법이 바뀌지 않는 한 시행령 손질에 한계가 있다. 거센 비난 여론을 등에 업은 여당은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새누리당은 시행령 안이 발표된 뒤 농·축·수산물 명절 선물을 예외로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해당 업계로부터 상당한 우려의 소리를 듣고 있다"면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여러 보완점에 대해 의견이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는 업계의 타격을 감안해 일부 예외 규정을 두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더불어민주당은 일단 시행부터 해본 뒤 부작용이 드러나면 개정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고, 국민의당도 헌법재판소 판결을 보고 결정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현재 헌재는 김영란법이 오는 9월 28일 시행되기 전 위헌 여부의 결론을 내기로 방침을 정하고 심리 중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 배우자 신고의무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다.한편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영란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지난번(4월 26일) 대통령이 말씀하신 데서 제가 덧붙일 것은 없다"고 답했다.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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