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해운·전자·자동차...풍요의 저주에 역습 당한 한국…그 속을 들여다보니
디스플레이·반도체도 中 투자에 공급량 과잉…자동차 공장증설도 문제현대重, 사무직 과장급 이상 희망퇴직 접수…생산직 등 최대 3천명 감축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세계 경제가 장기 정체기인 '뉴 노멀' 시대로 접어들면서 풍요의 저주가 한국 제조업을 강타하고 있다. 기업들이 팔아야 할 물건은 넘쳐나지만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저성장에 따른 공급과잉이 제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저가 경쟁을 주도는 형국이다. 공급과잉 현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조선 해운으로 시작된 공급과잉의 저주가 자동차와 전자 등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구조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전자 분야 '치킨게임' 재연 우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공급과잉의 덫에 걸린 대표 사례다. 중국 정부가 자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에 '묻지마' 지원에 나서며 LCD 패널의 공급량은 폭발적으로 늘고 가격은 추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작 LCD 패널의 수요가 줄어들었는데 중국은 오히려 생산시설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철저하게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를 고사시키기 위한 투자다. 2분기의 경우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의견도 있지만, 이미 치킨게임은 시작된 상황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려면 공급과잉 현상이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 XMC는 후베이성 우한에 총 240억달러를 투자해 월 20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칭화유니그룹 등 여타 중국 반도체 기업들도 일제히 메모리 반도체 투자에 나선다. 자동차시장도 공급 과잉의 문제에 노출돼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에 따르면,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는 8850만대로 전년 대비 2.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량의 경우 판매량을 크게 웃돌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은 약 9158만대에 이른 것으로 집계된다. 자동차 판매 성장이 계속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량은 이르면 2018년에는 1억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완성차 업체들은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기아차 멕시코 공장에 이어 하반기 중국 창저우, 충칭 공장을 준공한다. 도요타는 멕시코와 중국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해 공장을 건설하고 GM, 폭스바겐 등도 멕시코에서 증설을 계획 중이다. 중국 업체들까지 경쟁에 뛰어들며 공급과잉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 현지 업체들이 30~40% 낮은 저가 전략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크게 확대한 데 이어 올해는 더욱 공격적으로 생산량 증대에 나설 계획이다. ◆철강ㆍ조선ㆍ해운 등 국내 모든 산업계가 비명= 전차 군단 외 철강, 조선, 해운 등 한국 모든 산업계가 공급과잉의 덫에 빠져 비명을 지르고 있다. 철강의 경우 생산량을 대폭 늘린 중국 업체가 자국에서 채 소비하지 못한 철강제품을 해외로 밀어내기 하며 전 세계 철강 업계를 흔들고 있다. 이 같은 여파로 지난달 26일 정부는 철강 업종에 대해 '경기민감업종'에서 '공급과잉업종'으로 재분류하고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다.해운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선박 공급이 늘어났는데 수요가 둔화하는 수급 불균형이 본격화되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해운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평균 6%대를 기록하던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율이 지난해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수요 둔화 속 선박 공급이 크게 늘면서 선사 간 운임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운임 경쟁은 단가 하락으로 이어지며 수급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조선 대형 3사, 최대 4000명 인력 감축 등 자구책 마련=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는 이르면 이번 주 주채권은행에 최대 4000여명 이상의 인력 감축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안을 제출할 방침이다. 현대중공업이 가장 먼저 인력 조정을 실시한다. 기존 임원 25%에 달하는 총 60명의 임원을 줄인 현대중공업은 사무직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생산직을 포함해 전체 인력의 5~10%에 달하는 2000~3000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섰던 삼성중공업도 수시 희망퇴직과 임원 감축을 통해 500명 이상을 줄일 계획이다. 대우조선은 2019년까지 2300여명을 감원해 전체 인력을 1만명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자구계획을 내 놓은 바 있다. 하지만 채권단이 추가 인력 감축을 요구하며 600명 이상을 추가로 줄일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한계에 직면한 대표 업종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원샷법 등 기업이 스스로 제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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