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총선 전까지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조선과 해운업의 위기는 몇 년째 지속돼 온 해묵은 과제일 따름이었다. 지난 3월 현대상선이 자율협약을 신청할 때도 익숙하게 예상했던 수순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를 상기시킬 정도로 구조조정이 경제계 이슈를 모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됐다.총선 결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 때 200석까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무참히 깨진 여당의 참패는 곧 박근혜 대통령의 패배로 인식됐다. 레임덕 얘기가 공공연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는 경제다’는 패러다임이 급부상하면서 주류로 자리잡았다. 근거는 심각한 위기, 즉 구조조정이다. 물론 심각하다. 조선업만 놓고 보더라도 신규 수주가 없어 1~2년만 지나면 일감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분석이 나온다. 한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중국의 고도 성장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구조적 요인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쉽사리 반전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업 경쟁력을 놓쳐선 안 되지만 살아남은 기업의 덩치는 확 줄여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구조조정 바람이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흔들리는 권력을 붙잡아주는 것은 위기에 대한 불안감, 생존에 대한 선택권 등이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존재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여당이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내세울 때도 ‘정치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선진국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 필요한 곳에 공급하고 있으니 우리도 한국은행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실로 매혹적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이나 주택담보대출증권을 인수한다는 방법적인 면에서 양적완화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부터가 애매했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이 한국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해야할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부정적이었고 반대 입장을 밝힌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한국판 양적완화’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국장단과의 간담회에서 필요성을 언급하자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금융당국도 현재 시점에서 국책은행 건전성은 조선과 해운업 구조조정을 감당할 정도는 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워낙 구조조정을 세게 해야 한다고 하니 어떻게 될 지 몰라서” 한국은행에 SOS를 요청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한국은행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떠밀려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그런데 지금의 위기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최근 수년간 국책은행은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진척시키지 못했다”며 “부실 기업의 워크아웃 개시 시점을 지체시키고 지원을 확대해 금융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기능에 의해 존폐가 결정돼야 할 기업을 정부가 억지로 끌고왔다는 것이다. 이제 할 일은 위기를 과장하거나 이용할 게 아니라 차분히 대응책을 마련할 때다. 물론 초점은 대규모 실업 사태 방지가 돼야할 것이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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