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30년을 더 장수한 다빈치 건강식

그때그사람 - 샐러드와 과일, 채소스프를 즐겼던 천재의 '푸드케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1519년 5월 2일.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는 자신의 궁정 화가였던 남자를 안고 죽어가는 그의 몸을 두 팔로 받쳐 주었다.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가 죽어가고 있었다. 조르조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 이렇게 썼다. "왕의 품에 안긴 채 그의 영혼은 떠나갔다." 르네상스 최고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렇게 숨을 거뒀다. 2일은 레오나르도가 세상을 떠난 지 497년이 되는 날이다. 말년에 그는 프랑수와 1세의 궁정 화가로 일하고 있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루아르강의 앙부아즈 부근에 있는 왕의 여름 별장과 가까운 클로 뤼세성에서 보냈다. 레오나르도가 사망할 때 그의 나이는 예순 일곱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결코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르네상스 시대 평균수명이 40세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상당히 장수한 셈이다.그는 어떻게 당시 평균수명을 훌쩍 넘어 살 수 있었을까. 조르조 바사리는 레오나르도에 대해 "자연이 하늘의 기운을 퍼붓듯 한 사람에게 엄청난 재능이 내린 것"이라고 극찬했는데 그는 건강마저 타고 난 것일까. 후세 많은 사람들은 부유층들이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던 시절에 그가 채식을 고집했던 것을 장수의 비결이라고 여기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고기보다 샐러드와 과일, 채소를 즐겼고 쌀과 채소를 걸쭉하게 만든 스프를 좋아했다고 한다. '역사 속의 채식인, 피타고라스에서 뉴턴까지'라는 책을 보면 레오나르도가 채식을 하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추론하고 있다. 하나는 당시 채식과 금욕 등을 강조하던 신피타고라스주의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견습생 시절 절친한 친구인 토마소 마지니가 엄격한 채식인이었기 때문에 그도 어울려 채식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해부도

인체에 관심이 많아 평생 끊임없이 사람과 동물의 해부도를 그렸던 레오나르도의 관심사도 그가 채식을 고집하게 된 배경일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화가는 해부학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믿었고 30구가 넘는 시신을 직접 해부했다고 한다. 당시는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를 참으며 일주일 동안 장기를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고기라면 손사래를 칠만도 하다.특히 그의 해부 경험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적어두고 생활 속에서 항상 참고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그는 채식뿐만 아니라 원할 때 조금씩 먹어야 한다며 '소식'도 강조하고 있다. 또 화를 경계하고 슬픈 기분을 피하라고 했다. 요샛말로 하면 스트레스를 주의하라는 얘기다. 의자에 앉거나 일어날 때 꼿꼿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세'에 대한 충고도 있다. 한낮에는 잠자지 말라고 했고 술은 절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미루지 말라고 했다. 무엇보다 머리를 잘 쉬고 마음을 즐겁게 유지하라고 강조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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