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한 청포묵은 실처럼 곱게 채 썰어 소금과 참기름에 조물조물 간을 하고 쇠고기도 곱게 채 썰어 간장에 양념하여 볶는다. 숙주와 미나리는 다듬어 끓는 물에 데쳐서 소금과 참기름으로 무치고 달걀은 황백으로 나누어 얇게 부쳐서 곱게 채 썬다. 준비한 재료를 정갈하고 가지런하게 그릇에 담고 김을 가늘게 채 썰어 얹고 초간장을 뿌려서 골고루 섞어 먹는다.
탕평채
한식을 처음 배울 때 필수 코스로 등장하는 음식은 탕평채다. 아무리 급해도 한꺼번에 요리할 수가 없고 각각의 재료의 특징을 모두 살려 손질하고 양념을 하되 마지막에는 따로 먹는 것이 아니라 섞어서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봄이 되면 밥상에는 묵은 요리보다는 파릇파릇한 봄나물이 주를 이루며 모양새도 색감도 봄처럼 산뜻한 음식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대표가 탕평채이다. 주재료인 청포묵은 녹두 전분으로 묵을 쑨 것으로 청포묵무침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탕평채’라고 부르는 데는 역사 속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배운 것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여러 편의 사극을 통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조선의 제21대 왕인 영조이다. 영조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으로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조의 대표 정책은 ‘탕평책’과 ‘균역법’. 당파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신하들과 탕평책(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정책)을 논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차려진 음식 중에 여러 가지 재료를 곱게 채 썰어져 있고 맛의 조화를 이룬 음식을 ‘탕평채’라고 칭하고 함께 먹었다고 한다. 그날 임금님의 상을 책임지는 수라간의 최고 상궁이 어떤 음식으로 상을 차려 냈을지는 모르지만 탕평채 재료로 사용한 재료의 색과 맛의 어울림은 분명 모두가 화합하기를 바라는 영조의 깊은 뜻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우리 음식에는 탕평채처럼 여러 재료를 섞어 조화로운 맛을 내는 음식이 많다. 보기 좋게 담아두었다가 먹기 전에 어지럽게 섞어서 먹는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웃나라 사람들도 있지만 섞여진 재료들이 내는 그 조화로운 맛을 그들은 잘 알지 못한다. 탕평책의 의미처럼 봄 밥상에 탕평채 한 그릇을 올리고 소통과 화합을 꿈꾸어 본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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