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뒤 '신체 일부'가 남은 그녀 잔혹사

라스푸틴, 아인슈타인, 명월… '시신 엿보기'의 역사

[성 요한 세례자의 머리와 살로메], 안드레아 솔라리, 목판에 유채, 59* 58cm, 16세기 초반, 빈 미술사 박물관

"나는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했는데 당신은 어째서 나를 봐주지 않았나요? 요카난, 만약 당신이 나를 봤다면 당신도 나를 사랑했을 텐데."오스카 와일드는 ‘살로메’에서 소반에 얹혀 핏물 흐르는 세례 요한(요카난)의 목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살로메의 대사를 태연히 사랑의 감정으로 그려낸다. 요한의 목을 얻기 위해 계부 앞에서 반라로 매혹의 춤까지 춘 그녀가 진짜 갖고 싶었던 것은 그의 목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남자에게 선사한 죽음과 복수였을까. 에리히 프롬의 표현을 빌려 살로메의 사랑을 네크로필리아(시신 유골 애착증 환자)로 정의할 수 있을까? 살로메의 사랑도 행위만 놓고 보자면 끔찍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한 사체 훼손 사건이 즐비하다. 네크로필리아의 애착을 넘어선 대중의 신체 집착 사례를 살펴보자.

사진 = 라스푸틴

기록적인 크기로 남은 라스푸틴 제정 러시아 말기의 수도승 라스푸틴은 혈우병을 앓고 있던 알렉세이 왕자의 병증을 치료하며 황제 부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전횡을 저지른 당대의 괴승으로 알려져 있다. ‘육체의 속죄’를 주장하며 당시 귀부인들을 농락한 것으로 전해지는 그의 엽색 행각은 단순한 야사로 치부될 뻔했으나 그의 시신을 발견한 여인이 그의 성기를 잘라 보관하던 것이 오늘까지 전해오면서 신빙성을 얻고 있다. 1916년 암살된 것으로 기록된 라스푸틴은 100년 동안 자신의 행적보다 남다른 성기로 끊임없이 주목받으며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니, 살아서 저지른 죄에 대한 지독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사진 = 아인슈타인

천재의 뇌는 무엇이 다른가, 아인슈타인최근 중력파의 존재가 확인되며 다시금 주목받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은 그 남다른 천재성과 기행으로 역사상 가당 위대한 물리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죽기 며칠 전 지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는데, 수술을 권하는 의료진에게 “인공적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품위 없는 일이다. 주어진 일을 마쳤고 이제 떠날 시간이니 우아하게 떠나고 싶다.”는 말을 남기며 자신이 죽으면 화장할 것을 요청했다. 그의 뜻대로 그는 화장됐다. 그러나 사체 부검을 맡았던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가 유족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그의 대뇌를 적출해 보관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하비 박사는 이후 언론에 그의 뇌를 공개한 후 240개로 조각냈고, 현재까지 조각난 뇌는 포르말린 용액에 보관되어 있다. 죽은 아인슈타인이 이 사실을 알면 어땠을까. 엄청난 연구결과를 남긴 만큼 그의 뇌는 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평균 뇌의 크기보다 작아 이후 뇌의 크기와 지능지수 간의 비례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다.

사진 = 기생 명월의 초상으로 추정되는 여인상<br /> [紅蓮], 石井伯亭, 캔버스에 유채, 1918년, 松本市美術館

식민지 여인의 통한, 명월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요릿집은 명월관이었다. 궁중관리로 있던 안순환이 궁을 나와 차린 명월관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궁중요리를 선보이며 왕의 식탁을 대중에게 옮겨와 큰 인기를 누렸는데, 요리 말고도 빼어난 미색의 기생들을 만나볼 수 있어 당대 명사들이 모이는 사교 공간의 역할도 하곤 했다. 그중 인기스타는 ‘명월’로 알려진 기생으로, 그녀의 실제 이름과 기명은 기록된 바 없으나 그녀의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몰려든 명사와 부호, 일본 고위관리로 명월관은 연일 성황을 이뤘다. 문제는 그녀와 동침한 남성이 잇따라 복상사하면서 더욱 높아진 그녀의 명성이었는데, 마흔이 채 못 된 나이에 그녀가 요절하면서 명성은 곧장 전설이 되었다.

사진 = 국과수에 보존 된 명월 신체 표본, 문화재제자리찾기 제공<br />

일본 경찰은 그녀와 얽힌 남성들의 사인을 규명하겠다며 그녀의 사체에서 생식기를 끄집어내 보존 처리했고, 이는 일본이 패망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넘겨져 최근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되어오다 지난 2010년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가 제기한 폐기 소송을 통한 법원의 권고에 따라 소각처리 됐다. 명월이 생식기 표본은 사인규명이나 연구자료라는 명분을 구실로 당대 추문에 일제가 가진 왜곡된 호기심이 남긴 반인륜적 사료에 불과했다. 죽음의 자유를 허하라중세 유럽에서는 성인이 죽으면 그 시신이 영험한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사체훼손이 빈번히 자행됐다. 베드로의 시체는 손가락만 무려 35번 잘려나갔고,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망 직후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균등히 나누기 위해 토막 내어 냄비에 삶은 뒤 가져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죽어 말 없는 자들에게 되물을 순 없으나, 사체가 남아있는 사람 중 적어도 살아서 죽음 후의 자신의 보존까지 부탁한 이는 없었다.

사진 = 세척 처리 중인 레닌의 사체, ZH-TV 방송 캡쳐

레닌은 죽기 직전 자신을 어머니 무덤 곁에 묻어 달라 유언했으나 스탈린은 이를 무시하고 그의 사체를 영구보존처리 하여 남겼고, 그의 묘역은 관광명소가 되어 오늘까지 대중에게 전시되고 있다. 살아서도 험난했을 이들의 삶은 대중의 호기심과 목적에 의해 죽어서까지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 남아있는 그들의 신체가 증명하듯 대중의 구전에 남아있는 그들의 명성은 모두 허명에 불과하다. 시체 전시를 통한 장사꾼의 속내는 무엇일까, 값싼 호기심이 불러온 또 다른 네크로필리아가 아닐 수 없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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