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수다] 내 손에 훈장을 달아 준 봄나물

3월이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나 우리는 새 학기나 새 학년의 의미를 가지며 봄과 함께 찾아오는 3월이야말로 진짜 시작의 시기라고 여긴다. 파릇파릇한 봄나물들을 보니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이 떠오른다.

봄나물

좌충우돌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보내고 퇴근 후에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던 때였다. 퇴근 후에 만나는 친구들은 같은 사회 초년생이지만 나와는 많이 달랐다. 친구들은 멋진 정장을 차려 입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구두에 꽃향기 나는 향수를 뿌리고 손톱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색의 매니큐어를 바르고 나타났다.그러나 요리하는 나는 아침부터 재래시장을 돌며 장바구니를 들고 재료를 가득 사야 했으니 예쁜 옷과 구두는 언감생심이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질퍽거리는 시장을 돌아야 했으니 운동화는 흙탕물로 얼룩이 가득했다. 또 종일 요리를 하다 보면 꽃향기 대신 여러 가지 음식 냄새가 나와 한 몸이 되었다. 우엉이나 연근, 더덕, 도라지 같은 흙이 가득한 뿌리채소라도 다루는 날이면 손톱 밑에 흙이 가득 끼어 아무리 손을 열심히 씻어도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그중에서도 나의 손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봄나물이었다. 냉이는 뿌리 쪽에 흙이 뭉쳐 있으니 손으로 하나하나 다듬지 않으면 먹을 때 흙이 씹히기 일쑤였고 쑥은 누런 잎을 떼어내고 뿌리를 다듬어야 한다. 씀바귀는 손으로 잔가지를 떼어내고 싹싹 비벼 흙을 털어내야 하고 두릅은 뾰족한 가시에 찔려가며 다듬는다. 나물을 한 바구니씩 다듬는 날이면 손톱 밑의 흙은 당연하고 가시에 질린 영광의 상처와 손끝에는 지문이 보이지 않도록 풀물이 가득했다. 가끔은 내 손이 부끄러웠다.

냉이밥

그러나 한 가지, 한 가지, 나물이 내 손을 거쳐 맛있는 찬이 되고 국이 되고 전이되어 밥상이 차려지니 봄나물을 맛보는 즐거움이 컸다. 봄나물을 다듬으면서 여러 가지 나물을 알아가는 일도 참 재미있었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 어머니, 할머니들의 레퍼토리가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정말로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시장을 보는 일도 재료를 다듬는 일도 많이 편해졌다. 웬만한 재래시장은 비가 와도 이제 흙탕물이 튀지 않도록 지붕이 만들어졌고 대형마트들이 생겨나면서 시장을 볼 수 있는 곳도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나물을 다듬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냉이는 이미 한번 씻어 물기가 빠진 상태로 판매되니 냉이에 묻은 흙을 보기 힘들다. 쑥도 어찌 된 일인지 누런 잎도 뿌리도 어딘가에서 모두 떼어낸 채 판매대에 놓여 있다. 씀바귀는 너무나 매끈하고 깨끗하게 손질되어 판매되니 더 이상 내 손이 필요하지 않다. 이제 나물을 다듬느라 손톱에 더 이상 흙이 끼지는 않게 되었지만 어쩐지 봄나물의 향기로움은 그때보다는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봄이면 찾아오는 나른함인 ‘춘곤증’에는 봄나물이 제격이다. 뻔한 소리 같아도 봄이 왔으니 쌉싸래하면서도 향긋한 봄나물로 밥상을 차려 겨우내 쌓인 몸속 노폐물도 제거하고 잃었던 입맛도 되살려 활기차게 봄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 글=요리연구가 이미경(//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