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응 금융부 차장
영화 '데몰리션맨'의 여주인공(산드라 블록)은 남주인공(실베스타 스탤론)에게 성관계를 제의한다. 수십 년간 냉동 상태로 있다가 깨어난 남주인공이 들떠 옷을 벗고 입냄새를 확인하지만 여주인공은 옷을 벗는 대신 헬멧 두 개를 가져온다. 영화 속 시점인 2032년에는 실제 몸이 닿는 관계를 '비위생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사이버 관계만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영화가 개봉됐던 1993년에는 흥미롭긴 해도 "말도 안 된다"고 하고 말았는데 최근에는 유사한 시제품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1990년에 국내 개봉됐던 '백투더퓨처2'의 미래 시점은 2015년이었다. 개봉 당시에 신기하게 여겼던 평면 벽걸이 TV와 태블릿PC, 지문인식, 주름성형과 모발이식, 화상회의 등은 이미 일반화된 지 오래다. 자동으로 끈이 조여지는 운동화, 공중부양 스케이트보드 등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거짓말 같았던 미래는 현실이 돼 가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불과 몇 년 새 일상의 지배자가 돼 버렸다.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뻔한 승부라고 생각했다.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는 바둑 아닌가. 바둑학원에서 홍보할 때 주로 '자녀들의 두뇌 계발'을 내세운다. 바둑은 인간 두뇌의 정점을 찍는 게임 중 하나다. 체스와는 또 다르다고 여겼다. '언감생심 그래봤자 '기계'가 감히 바둑 세계 챔피언한테 도전하다니' 싶은 마음일 뿐이었다. 그런데 좀 살펴보니 간단치 않아 보였다. 알파고는 프로 바둑 기사들의 대국 3000만건을 입력받아 쉼 없이 '학습'했다고 한다. 일종의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다음 수를 예측하는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기계'가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졌다. 이세돌 9단도 "아직은 초기 단계인 인공지능한테 질 리가 없다"고 했다. 5년 후, 10년 후는 모르겠단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란 말처럼 들렸다. 낭패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지난달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인류에 위협이 되는 살인 로봇 개발을 규제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백투더퓨처'처럼 '터미네이터'도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가. 과학기술은 인류의 행복이 목적이어야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그 역시 마치 생물처럼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모르게 되는 듯하다. 인류의 최대 적은 인간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먼 미래까지 갈 일도 아니다. 제조업에서 로봇의 역할이 커지고 있으며 금융에선 로봇이 투자 자문을 하고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기사 쓰는 로봇까지 나왔다. 자칫하면 "로봇보다 못하다"는 얘기 듣기 십상이다. 로봇과 경쟁을 할 줄이야. 일단은, 이세돌 9단의 선전을 기원할 따름이다. 인간 이세돌, 파이팅!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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