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멀미

류정민 사회부 차장

어린 시절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공포'에 시달렸다. 어른들이 주로 겪는 '명절증후군'은 아니었다. 남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내게는 큰 걱정, 바로 '멀미'였다. 시골집에 내려가기 위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약을 먹는 일이었다. 알약도 먹었고, 작은 병에 들어 있는 물약도 먹어봤다. 한때 귀밑에 붙이는 패치가 효과가 좋다는 말에 그것도 사용해봤다. 하지만 모두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특히 물약을 먹고 나면 왠지 속이 더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차부(車部)에서 고속버스를 기다릴 때부터 침이 고이고 메스꺼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멀미의 고통은 차를 타기 전부터 시작됐다. 버스를 타고나면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잠을 자보기도 했지만, 멀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망은 단 하나, 다시 땅을 밟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기 전에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검은 봉지가 준비돼 있었다. 휴지도 둘둘 말아 주머니에 넣었다. 언제든 '일'을 처리할 준비를 갖춰야 했다. 차라리 '구토'를 하고 나면 속이 편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구토하기 직전 진땀이 나고 속은 메스꺼운 그때가 가장 고통이었다. 버스 안 밀폐된 공간에서 구토하면 그 냄새는 전체로 퍼졌다. 그 당시 어른들은 나이 어린 '민폐 승객'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해주는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 더 많았다. 멀미로 인한 고통은 나 혼자의 경험이 아니었다. 같은 버스에서 멀미에 시달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멀미(motion sickness)는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주기적인 가속에 갑자기 노출될 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당시 어른들의 얘기에 더 공감이 간다. "차를 자주 타지 않아서 멀미하는 거야." 1980년대까지는 멀미로 고생하는 이들이 참 많았다. 평소 버스를 탈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은 멀미에 취약했다. 몇 시간씩 밀폐된 공간에서 앉아 가야 하는 고속버스는 고통이었다. 요즘은 버스에서 멀미로 고생하는 이들은 많이 줄었다. 환경 변화의 영향 아닐까. 승용차가 대중화되면서 어렸을 때부터 차를 타고 다닐 일도 늘어났다. 내가 멀미의 고통에서 벗어난 시기도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다. 그런 것을 보면 멀미에도 인생의 교훈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고통도 익숙해지면 견뎌낼 힘이 길러진다는 교훈 말이다.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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