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수 정치경제부 차장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은 기본적으로 '정규직 기득권을 줄이면 기업 경쟁력이 올라가고 청년을 더 뽑게 된다'는 것이다. A가 되면 B가 되고 C가 될 것이라는 '3중 가정' 자체를 신뢰하기 어려운 데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할 부작용까지 감안하면 결과 예측은 더 어려워진다.5가지 법 개정안과 2개 지침으로 이루어진 노동개혁에는 노동자를 위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것도 섞여 있다. 정부의 노동개혁에 무턱대고 찬성하기도 반대하기도 어려운 이유다.의견을 정하기 힘든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 배우고 일하다 죽을'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 하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과 연계돼 있다. 문제는 보유한 의자에 비해 앉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데서 시작된다. 정부는 오래 앉은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혹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한 의자에 둘이 앉거나 2시간(원하면 4시간까지)씩 돌려가며 앉으라고 한다. 단기적으로 노동시장은 잘 굴러가는 듯 보이고 정부 눈치를 보는 대기업들은 청년고용을 일시적으로 늘릴지 모른다. 그러나 기업이 줄어든 부담만큼 청년을 뽑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노동개혁의 허점이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의자가 새로 생기는 게 아니란 사실은 맹점이다.지난 20여년간 기업들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도 의자 수를 줄여 왔다. 벌어들인 돈은 자신들의 의자를 더 고급으로 만들거나 사내에 쌓아두는 데 썼다. 이제 와 중국에 밀리고 미국ㆍ일본과 멀어지는 처지에 놓이자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꼴이다. 이런 측면에서 시급한 것은 노동시장이 아닌 기업시장의 혁신 즉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샤오미에 밀리지 않고 현대차가 BMW와 아우디보다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도록 독려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내 유보금 및 세금 문제와 관련 있다.기업 혁신의 기본 조건은 인재다. 그러나 비정규직 확대는 노동숙련도 축적을 방해하고 생산성 저하와 성장잠재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외국 기업에 밀리면서 고용까지 불안정한 대기업을 고급 인력들이 앞으로도 선호해줄까. 담합ㆍ횡령 등 범죄를 가벼이 여기고 정부는 그들을 쉽게 풀어주며 골목상권 진출, 하청업체 후려치기 등 쉬운 방법으로 위기를 넘기려는 대기업들을 이대로 놔둔다면 기업은 혁신 유인을 갖기 어렵고 애국심 마케팅에 의존하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게 분명하다.'의자 늘리기'를 위해 정부가 주력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청년창업을 활성화해 유망 스타트업을 양성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지만, 노동개혁에 정권의 사활을 거는 것과 비교해 보면 관심의 크기는 작아 보인다.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이 무조건 잘못됐다 할 순 없다. 그러나 노동자원 재배치는 기업혁신의 일부에 불과하며, 심지어 기업으로 하여금 손쉬운 해법에 의존해 혁신을 그르치게 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정말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더 큰 차원의 개혁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대로는 '헬조선'을 '헤븐코리아'로 바꿀 수 없다.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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