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내 한 로또 판매점 앞. 미국 파워볼 복권 추첨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 14일 미국에서 무려 1조9000억원 당첨금이 걸린 '파워볼' 복권 추첨이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로또 열풍이 불고 있다. 숫자 몇 개를 골라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가리는 '복권'은 가난한 서민들이 작은 금액으로 스릴을 즐기면서 운이 좋으면 '일확천금'과 인생역전을 꿈꿀 수 있는 놀이ㆍ여가다. 실제로 당첨자 중엔 일거에 수십억원의 당첨금을 손에 쥔 후 착실하게 관리하면서 평소 꿈꾸었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과도한 몰입으로 인해 도박 중독이 되거나 거액의 당첨금을 받은 후 흥청망청 탕진해 인생역전은 커녕 패가망신의 길에 이른 사람들도 상당수다. 또 정부가 서민들의 사행심을 부추겨 '고통없는 세금'을 거두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세 얼굴의 로또'가 보여주는 천태만상 속으로 들어가보자.▲'로또의 저주'는 어디까지 사실인가?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로또에 당첨돼 일확천금을 했지만 오히려 불행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2003년 로또 1등에 당첨돼 역대 두번째로 많은 당첨금인 242억원을 수령한 김모씨가 대표적 사례다. 김씨는 세금 떼고 189억원을 받았지만 주식ㆍ병원 등에 투자에 했다가 실패해 재산을 다 날렸다. 이후 김씨는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A씨에게 로또 당청금 영수증을 보여주며 접근해 '투자 수익'을 미끼로 1억2200여만원을 가로챘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이같은 사람들의 사례가 속속 나타나면서 세간엔 '로또의 저주'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사례도 많다. 지난 2014년 로또에 당첨돼 20여 억원의 대박을 터뜨린 김형철(가명ㆍ40대)씨.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우고 외제차부터 사지 않겠냐는 세간의 통설과 달리 김씨의 생활은 변한 게 없다. 부인 외 아무에게도 당첨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직장도 계속 다니고 있다. 당첨금 중 일부로 아파트만 좀더 넓은 곳으로 옮겼을 뿐, 나머지는 은행 예금ㆍ부동산ㆍ펀드 등에 골고루 투자해뒀다. 김씨는 "예전에 수백억원대 당첨금이었다면 몰라도 요즘 금액으로는 간신히 노후 대책 정도만 될 수준"이라며 "단지 마음이 좀 편해지고 여유가 생겼다는 점만 빼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사자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로또 전문 업체 엄규석 연구위원은 "언론에 부정적 뉴스가 많이 보도되지만, 실제 로또 당첨자들을 보면 당첨금을 받아 돈을 흥청망청 낭비하는 사람보다는 본인의 꿈을 찾아가는 밑천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당첨이 돼 거액을 수령했다면 잔치를 벌이고 외제차를 살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본인의 인생계획을 차분하게 재설계해 보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로또는 엄연한 도박"로또 도박 중독자들은 의외로 많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전국에 문제성 도박자가 약 200만명으로 이중 2~3% 즉 4만~5만명 정도가 로또 도박에 빠져 매주 수십만~수백만원 어치의 복권을 구입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로또 도박 중독을 예방하려면 우선 로또도 엄연히 도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급선무다. 로또는 '우연한 사건'에 돈을 걸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카지노ㆍ카드ㆍ화투 등과 마찬가지로 '도박'에 해당된다. 특히 재미 삼아 샀다가 당첨돼 소액이라도 획득한 쾌감을 느껴 본 사람이 중독될 확률이 높다. 이들은 "로또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자기만의 확률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30~40장을 한꺼번에 구입한다고 해도 실제 당첨 확률에는 큰 변동이 없지만 본인은 굉장히 높아진다고 생각해 투자 금액도 초기 몇천원에서 1주에 수백만원까지 순식간에 늘어난다. 그러다보니 1년에 수천만원의 빚이 쌓이는 것은 순식간이다. 전영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본부상담센터장은 "로또도 도박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하지만 때로는 장려하고 있는 게 아이러니한 현실"이라며 "센터를 찾아 온 로또 도박 환자들 중에선 패가 망신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중독됐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가족 등과 함께 치료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고 치료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고통 없는 세금' 로또빈자에게 매기는 고통없는 세금. 로또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부의 무작위적인 분배를 이루는 좋은 수단이지만, 문제는 서민층이 주로 복권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고졸 이하 학력자는 대졸자보다 4배 많이, 흑인들은 백인보다 5배 더 많이 복권을 산다. '빈자(貧者)의 세금'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로또 판매 수익을 ▲저소득 취약계층 ▲서민주거안정 ▲문화예술진흥 ▲국가유공자 ▲재해재난 등 5대 분야에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부자들에게 거둬 쓰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전가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근거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복권 놀이는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한 겉치레이며, 있지도 않은 희망에 매기는 세금"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로또는 불황일수록 서민들을 더 유혹한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성장률이 0.3%에 그쳤던 2009년 로또는 불티나게 팔렸다. 2012년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03년 한때 광풍이 불었다가 판매액이 줄어들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2009년부터 1인당 로또복권 구입액이 6만1526원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0년 6만2635원, 2011년 7만1659원 등 점점 늘어나 최근 들어선 매년 7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2002년 12월 2일 출시된 로또 복권의 국민 1인당 평균 복권 구입액은 2012년 기준 73만4518원에 달한다.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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