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국제유가의 지속적인 내림세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이 깊다. 내년부터 3년간 적용될 물가안정목표를 2%로 제시하고 물가 하방을 막는 '디플레(디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쳐나가겠다고 공언했지만 저물가 탈피의 키포인트인 '유가'가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기존 유가 향방 전망마저 빗나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창립 65년 이후 처음으로 물가 띄우기 실험에 나선 이 총재를 억누르고 있다.29일 한은에 따르면 내년 1월 발표되는 수정 경제전망에서 유가 전망치의 하향 조정에 따른 성장률, 물가상승률 등 경제지표 전망치의 동반 하향 가능성이 크다. 국제유가 전망을 담당을 담당하는 조사국 실무진들이 국제유가의 동향과 각 기관의 전망치 등을 취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은 앞서 지난 10월 경제전망 당시 내년 원유도입단가를 배럴당 58달러로 추정해 소비자물가상승률 1.7%를 예상했다. 이는 올해 하반기 예상치 53달러보다 상승한 수치였다. 원유도입단가는 국내에 수입되는 두바이유와 브렌트유 등의 평균가격을 3대1 비중으로 산출한 단가로, 두바이유 도입단가보다는 다소 높은 편이다.두바이유의 가격이 이 달 들어 지속적으로 저점을 낮추고 있어 내년 원유도입단가의 하향 조정을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두바이유는 지난 23일(현지시간) 11년 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31.82달러로 떨어졌다. 비록 다음날 32.83달러로 올라섰지만 이는 유가 폭락에 대한 기술적 반등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이 총재도 내년 유가 전망치의 하향 조정에 따른 물가상승률 하향을 시사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유가하락이 내년 물가에도 상당 부분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유가의 예상치 못한 급락 행보로 한은의 '물가 띄우기' 길이 시작부터 커다란 장벽에 부딪혀 있다는 데 있다. 올 들어 물가상승률은 1% 아래에서 머물렀다. 물가안정목표 하한인 2.5%에 크게 못 미친다는 이유서 디플레 논란도 있었지만 사실 디플레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저물가였다.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는 올 1월 이후 줄곧 2%대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저유가만 아니었다면 1%대 이상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사진=아시아경제DB
앞으로의 국제유가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국제유가를 연평균 배럴당 45달러로 보고 있다. 이는 올해 평균인 51달러보다는 12%정도 낮은 전망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역시 국제유가가 2040년에야 배럴당 95달러까지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6월 기록했던 배럴당 100달러 이상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25년이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 셈이다. 이 역시 내년에도 지금과 같은 저유가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결국 저유가가 물가 띄우기에 나선 이 총재에 부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추가로 기준금리를 내려 물가 띄우기에 나서야 하지만 이 역시 위험이 뒤따른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내외 금리 차 축소로 국내 증시와 채권시장 등에 들어왔던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미국 금리 인상 직후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내년 3월께 미국이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중국이나 브라질 등 신흥국의 위기가 겹친다면 안심할 순 없다. 그렇다고 저물가 기조를 지켜 볼 수만도 없다. 한은 역사상 처음으로 물가안정목표치 미달 시 설명 책임을 묻도록 규정해뒀기에 만약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경기예측과 통화정책 실패로 비춰지며 중앙은행의 신뢰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어서다. 한은은 내년부터 3년간 적용될 물가안정목표 2%를 발표하면서 6개월 연속해서 ±0.5%포인트를 초과 이탈하면 총재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그 이유와 대책을 설명하도록 했다. 만약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물가상승률이 1.5%를 계속 밑돈다면 7월엔 총재가 나서 이를 설명해야 한다. 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계속 ±0.5%를 초과 이탈하면 3개월 마다 다시 공개석상에 서야 한다. 저유가 등에 의한 저물가 상황을 한은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은은 "지금처럼 유가에 물가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한은이 선택할 수 있는 보기가 많지 않아 걱정"이라며 "이 총재가 저유가를 방어하며 물가관리를 하면서 국내 경기를 살려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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