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준 통계청장
평소에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지만 언제부턴가 주말에 챙겨보는 드라마가 생겼다. 모 케이블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응답하라' 시리즈다. 특히 최근 방영 중인 '응답하라 1988'은 시청률도 높지만 나이든 어른부터 어린 청소년들까지 세대 구분 없이 모든 연령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 덕분에 아들이나 아래 세대들과 대화의 소재도 풍부해지고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당시를 살았던 세대는 1988년 올림픽을 포함해 그 시절의 시대상과 풍경을 재현한 모습을 보며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아들이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석유곤로, 연탄 등이 나오는 장면이 낯설고도 신기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다자녀 가구에서 형제나 친구들과 밝고 꾸밈없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홀로 자라는 현재의 젊은 시청자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다.드라마를 보면 어느 가족이 그 시절 아주 귀했던 바나나를 한 개만 달랑 사서 칼로 잘게 잘라 나눠 먹는 모습이 나온다. 당시에는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 수입이 자유화되기 전이라 가격이 정말 비쌌다. 1988년 당시 우리의 삶은 넉넉하지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4435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8년은 우리나라가 90년대 경제 르네상스의 씨앗을 마련한 시기이기도 했다. 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우리 경제는 3년 연속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으며, 1996년에는 마침내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하게 됐다. 또한 복지부문에 있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과 최저임금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된 해 역시 1988년이다. 올림픽 이후 한국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통계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1988년을 지나면서 국가통계를 담당했던 통계조직의 위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통계청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공보처 통계국으로 출발해서 내무부 통계국,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으로 있다가 42년만인 1990년 12월에 통계청으로 승격했다. 올해로 통계청이 승격을 한 지 4반세기, 즉 25년이 됐다. 지난 25년간 통계청은 우리사회 곳곳에서 필요한 국가통계를 작성하고 사회 변화에 맞춰 신규 통계를 개발해 온 것은 물론 글로벌 통계사회에서 국제적인 위상도 크게 키워 왔다. 통계청은 현재 유엔 통계위원회 위원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위원회 의장단으로서 국제 통계사회에서 의제설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에 선진 통계시스템을 지원하는 공적 원조 사업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먼 훗날 승격 25주년인 올 한 해 통계청을 배경으로 정책드라마를 만든다면 어떤 장면을 포함시킬 수 있을지 생각을 해봤다. 올해는 행정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등록센서스 방식의 인구주택총조사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특히 인터넷조사 참여율이 48.6%에 달해 지난 2010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2015년은 통계청에게 빅데이터 원년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공공 빅데이터 기반의 등록센서스를 실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네이버 등 다양한 민간 기관들과 빅데이터 기반 공익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공공과 민간의 빅데이터 연계를 통한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기록하고 싶다. 빅데이터 시대 개막을 조직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빅데이터과 전담조직 신설도 빼 놓을 수 없는 소재가 될 것이다. 개인과 조직을 막론하고 드라마처럼 어려울 때 '응답하라'라고 외치며 불러내고 싶은 추억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부르고 싶을 만큼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드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통계는 과거와 현재를 기록을 넘어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과거의 통계를 보면서 옛 일을 돌아보는 한편, 청양띠의 해가 며칠 남지 않은 세밑인 지금은 다가올 2016년에게 희망과 신년계획을 담아 또 다른 '응답하라'를 주문하고 싶다. 유경준 통계청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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