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안개 속을 행군한 '2015년 한국경제'

박명훈 주필

사무실에 새 달력을 걸었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 붉은 원숭이 새해의 달력이다. 그림 한 장 없는 건조한 달력이지만 '올 한 해도 저물어 가는구나'하는 감회를 불러오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한 장에 세 달씩 들어 있는 달력의 첫 장 맨 위에는 2015년 12월이 매달려 있다. 올 한 해가 온전히 지나간 것은 아니라는 징표다. 정월은 한가운데에 자리했고 그 아래로 2월이 이어진다. 일견하니 세 달 빠짐없이 연휴가 들어있다. 12월 성탄절 연휴 3일, 1월 신정 연휴 3일, 2월에는 설 연휴 5일. 연말연시에 직장인들 대박났구나!다시 생각해 보니 짧은 생각이었다. 달마다 연휴가 누구에게나 반가운 것은 아니다. 도심 골목의 작은 음식점, 일용직 근로자, 시급 아르바이트생…. 그들에게 연휴는 생계의 위협일 뿐이다. 365일이 쉬는 날인 실업자나 기계를 계속 돌려야 월급이 나오는 영세기업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샐러리맨만 있는 게 아니다.빛과 그늘은 공존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에서 보이는 세상만을 바라본다. 때로는 다른 세상이 보일까봐 질끈 눈을 감기도 한다. 새해 달력에서 연휴를 찾아내 기꺼워한 것은 스스로 주 5일 근무에 길들여진 직장인이라는 고백이다.돌아보면 올해처럼 한 쪽만 보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적도 없었던 듯싶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했다. 짙은 안개가 사위를 둘러싸 음영과 앞길을 제대로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혼돈 속에서 모두들 자기가 보고 있는 것,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외쳤다.숫자가 객관적 사실을 드러낸다는 경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기가 살아나는지, 일자리는 늘어나는지, 개혁은 하는 것인지 모두 알쏭달쏭했다. 그런 애매한 상황이 몇 년째다. 다가오는 2016년 새해의 경제 전망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 쪽 얘기를 듣노라면 두루 잘 돌아가는 듯했다. 전혀 무근한 것은 아니었다. 해외 신용평가회사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올리며 일본을 제쳤다. 정부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최우수 평점을 받았다. 0%대 행진을 거듭하던 경제성장률은 3분기에 1%대를 회복했다. 정부 입장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깊은 뜻을 몰라주는 정치권과 이익집단의 발목잡기다. 화급한 경제살리기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4대 개혁은 속도를 내지 못한다. 해외에서 한국경제를 상대적으로 호평가하는 데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지구촌 불황과 저성장 여파로 눈높이가 크게 내려간 때문이다. 많은 나라가 채무위기를 겪고 있다. 원자재 값 폭락으로 나라 곳간이 거덜 나는가 하면 장기불황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그런 쪽의 눈으로 본다면 한국경제는 훨씬 나은 편이다. 그러니까 이대로 쭉 가도 괜찮다는 말인가. 선방했다고 자화자찬할 것인가. 저성장은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손을 들 것인가. 박근혜정부에 2015년은 기회의 해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년사에서 올해를 '우리 편'이라 선언한 것은 나름 근거가 있었다. 큰 선거도 없었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개혁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됐다. 실세답게 최 부총리는 마음껏 칼을 휘둘렀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부동산 경기를 띄웠다. 금리를 내리고 소비세도 깎아 줬다. 민간의 세일행사까지 정부가 나서 방석을 깔았다. 하지만 성장률 전망치를 1년 내내 고쳐 써야 했고 수출은 계속 뒷걸음질 쳤다. 산업경쟁력이 떨어지며 많은 기업들이 부실의 늪으로 추락했다.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치솟는 전월세 값은 민생을 옥죄고 있다. 연초만 해도 '3만달러의 꿈'에 부풀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오히려 작년보다 줄어들 게 확실해졌다. 서민과 기업, 시장에서 바라본 한국경제의 2015년은 우리 편도, 선방한 해도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마무리하거나 성취하지 못한 미완의 해이자 고통의 행군을 거듭한 해였다.곧 경제팀 수장이 교체될 것이다. 사방은 절벽이고 남아 있는 정책의 화살은 많지 않다. 오만하거나 착시하면 안 된다. 빛과 그림자를 두루 살피고 집중해서 정확한 표적을 찾아내야 한다. 2015년 경제가 세밑에 남기는 고별사다.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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