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 사회부 차장
초등학교 시절 집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구슬치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했다. 그 추억을 간직한 공터는 사라진 지 오래다. 꾸불꾸불 좁은 동네 골목도 과거의 얘기가 돼 버렸다. 동네 자체가 사라지고, 그곳에는 말끔한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동네의 변화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동네 어른들이 자랑(?)하던 '○○목욕탕'이 사라진 것도 그중 하나다. 다른 곳보다 물이 좋다고 했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그 시절 내게 목욕탕은 공포와 유혹이 어우러진 묘한 공간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그곳을 찾았다. 목욕탕 앞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누군가는 들어갔고, 다른 누군가는 물기 젖은 모습 그대로 그곳을 나섰다. 목욕탕 앞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었다. 때로는 여자아이와 마주치기도 했다. 서로 웃고는 있었지만, 민망한 그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목욕탕 가기가 망설여졌던 것은 '때수건'의 아픔 때문이다.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힘을 줘야만 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목욕탕은 비좁았고, 사람들은 넘쳤다. 잠깐 목욕을 하고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다들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인지 열심히도 때를 밀었다. '아픔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달콤한 유혹 때문이다. '바나나 우유', 목욕 이후 경험하는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왜 바나나 우유였을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목욕 후 그 맛은 달콤함 그 이상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저마다 바나나 우유를 들고 목욕탕을 나섰다. 때수건의 공포는 이미 잊었는지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목욕탕의 추억도 이제는 과거형이다. 갈색 벽돌의 거대한 굴뚝, 전형적인 동네 목욕탕의 모습은 이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찜질방, 피트니스센터까지 어우러진 대규모 시설의 사우나가 동네 목욕탕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지난 주말 아들과 시내 '○○○사우나'를 찾았다. '열탕' '약탕' '냉탕' 등 다양한 이름의 '탕(湯)'과 작은 수영장까지 마련된 곳이었다. 아들은 신이 났다. 이것저것 물놀이 장난감까지 챙겨왔다. 목욕탕은 공포의 공간은커녕 놀이터로 인식되나 보다. 그렇게 물놀이(?) 시간을 마치고 목욕탕을 나서려는데 아들이 한마디 건넸다. "아빠 우리 바나나 우유 사 먹어요." 참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세상은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나 보다. 우리는 항아리 모양의 그 바나나 우유를 각자 손에 들고 발걸음 경쾌하게 집으로 향했다.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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