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영화 '베테랑', '암살'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쇼박스 제공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상반기 42.5%에 그쳤으나 30일 현재 50.8%다. '암살(1270만4656명)'과 '베테랑(1341만5965명)'의 뒤를 '사도(626만1627명)' '내부자들(358만9401명)' 등이 차례로 이어가고 있다. 히트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우리의 어두운 사회상을 반영하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권선징악으로 대리만족을 준다는 점이다. 스크린은 해방구가 되어 억압과 분노를 해소하고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쾌감을 제공한다. '베테랑'에서는 이름없는 형사가 재벌가 '도련님'을 감옥에 보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대중들은 세습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재벌가의 구성원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는 '맷값 폭행', '보복 폭행', '환각 마약파티', '땅콩 회항'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에 그쳤다. 류승완(42) 감독은 주인공인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을 '현대판 홍길동'으로 표현했다.금수저를 문 조태오(유아인)는 불만과 욕구를 힘없는 주위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쏟아낸다. 트럭기사(정웅인)가 받으러 온 돈이 450만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어이가 없네"라며 폭행한다. 이런 포악질은 관객에게 낯설지 않다. 그리고 통쾌한 액션이 동반된 심판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극장 문을 나서면 다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의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내부자들' 역시 이런 씁쓸한 뒷맛을 간직하고 있다.영화 '사도' 스틸
정치권력과 재벌, 언론 등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내부 권력자들을 '베테랑'처럼 시원하게 심판하지만 그 후유증을 무겁게 조명한다. 버림받은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은 자신의 오른손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는다. 정치 싸움판에서 이기고도 승리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는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우장훈(조승우) 검사에게 "나랑 영화 한 편 하자"고 한다.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막막함을 드러내는 대사다.올해 박스오피스 5위에 오른 '사도'는 두 영화와 다른 면에서 우리 삶의 일면을 반영한다. 영화,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온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지만 바라보는 각도를 바꿨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관심을 집중하는 '교육'을 비춘다.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와 아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갈등을 빚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메시지는 냉랭하게 전달된다.우리나라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 가장 큰 원인은 성적에 대한 중압감이다. 부모의 지대한 관심을 못 견뎌 하면서도 의존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보이는 청소년이 적지 않다. 우울, 불안 증세 등 정신적인 고통과 질병에 시달리는 예도 허다하다. 이준익(56) 감독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