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현장] 화해 말한 YS…남북관계에도 '새벽' 올까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2일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을 돌이켜 남북관계 현주소에 대입해 볼 때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꼽자면 1994년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이다.YS는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천명하며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 같은 민족인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 대목이다.그러나 임기 초반 불거진 1차 북핵 위기로 YS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남북관계는 요동쳤다. 당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잇따라 선언했고 '서울 불바다' 발언까지 쏟아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됐으나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이마저도 무산됐고 연달아 '김일성 조문'을 둘러싼 논쟁이 파동으로 이어졌다.'만약에' 1994년 YS와 김 주석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났다면 그 후 6년 뒤 이뤄진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만남보다 파급력이 컸을 것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관계와 동북아의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핵 문제는 초반에 가르마를 타고 남북이 상생의 길을 내디뎠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YS의 영결식이 열리는 오는 26일 남북은 당국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접촉을 갖는다. 정상회담도 당국회담 자체도 아닌 실무접촉을 하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지만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맺었던 지난 8ㆍ25합의의 6개 사항이 모두 이행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크다.숙명의 라이벌이었기에 오히려 정치적 동반자일 수밖에 없었던 DJ와 마찬가지로 YS의 마지막 유지(遺志)도 화해와 통합이었다.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양 김을 떠나보내며 두 거목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관계에, 더 나아가 통일에도 '새벽'이 올 날을 기대해본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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