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백기 든 '백기사', 우호지분 세일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국내 대기업들의 '백기사' 밀월시대가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저성장과 경기 침체 장기화로 자본시장이 경색된 탓이다.  백기사란 기업 경영권 방어에 우호적인 주주를 말한다. 특히 지배구조가 외국 기업에 비해 취약한 국내 대기업들은 서로 간에 백기사 관계를 유지해왔다. 2003년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이 SK 지분 15%를 보유하고 경영권을 인수하려고 하자 신한ㆍ하나ㆍ산업은행이 SK의 백기사 역할을 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기업들의 끈끈했던 백기사 관계가 느슨해지고 있다. 백기사 역할을 자처했던 기업들이 경기 불황에 자금난을 겪고 있는 데다 외국 헤지펀드로부터 적대적 M&A 시도가 빈번해지면서 우호지분 매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워진 경영환경에 대한 대응과 자사 경영권 보호 자금 마련을 위해 우호지분을 시장에 내다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은 보유 중이던 현대차 주식 184만6150주(약 3000억원)를 장 마감 후 시간 외 대량매매를 통해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게 팔았다. 앞서 정 부회장은 지난 9월에도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 316만4550주를 매입했다. 이제 현대삼호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 주식 42만여주만 남았다. 업황 불황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상황을 볼 때 이 주식도 조만간 처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간의 백기사 관계도 끝난다. 현대중공업과 포스코 간 상호지분보유 협정도 지난 9월 8년 만에 막을 내렸다. 현대삼호중공업이 보유 중인 포스코 주식 전량(130만8000주)을 2261억원에 팔았다. 이로써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포스코 주식은 없어졌다. 사실상 동맹관계가 종료된 셈이다. SK텔레콤도 연말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내년 상반기 CJ헬로비전 인수 계획에 따른 조 단위 자금 마련을 위해 포스코 우호지분을 정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 간 남은 주식은 SK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포스코 지분 1%(124만655주)가 전부로 2165억원 수준이다.  포스코도 지난해 지분 2.94%에 해당되는 SK텔레콤 179만6000주를 4627억4900만원에 처분했다. 앞서 SK텔레콤 역시 2012년 포스코 보유 지분 중 절반가량(1.42%)을 처분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포스코 지분의 블록딜 자체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포스코의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지분 매각을 원한다면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증권사들은 이 같은 대기업 간 우호지분 매입ㆍ매각은 해당 기업의 주가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와 원ㆍ달러 환율, 기업의 실적 등 복합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현대삼호중공업의 현대차 지분 매각에도 모기업인 현대중공업 주가는 계속 하락세를 기록 중"이라며 "삼성물산과 KCC 간의 백기사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가에는 큰 호재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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