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국 한국시설안전공단 지반안전실장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에 사는 사람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수명이 더 길다는 발표를 보면서 아이러니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최신 병ㆍ의료시설이 완비돼 있고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수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20년 전 우리들의 기억에서도 점차 잊혀지고 있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를 기점으로 시설물에 대한 유지 관리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 '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시특법)'이다.특별법에 의거해 한국시설안전공단이 설립됐고 기존에 일부 대학 교수들에 의해 행해지던 안전진단도 1000여개의 안전진단전문기관이 설립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유지 관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시설물 유지 관리업체의 업무도 그간 균열 보수 등에 국한되던 것이 단면 보강, 내진 보강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산테크로밸리 빌라 붕괴사고, 제2롯데월드 주변 석촌호수 물빠짐 현상, 서울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공사로 인한 석촌 지하차도 지반 함몰 등 잊혀질 만하면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뭐가 잘못됐고 무엇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까. 우선 시설물의 고령화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술력으로 지은 시설물은 1970년대 초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으로부터 시공된 게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시설물을 설치한 지 45년 정도가 됐다는 얘기다. 사람 나이에 비유하면 90세에 해당한다. 허리도 아픈 곳이 생기고, 가끔 감기가 걸리면 심한 병증을 호소하기도 하는 시기다. 시설물은 아프다고 말은 하지 않지만 아프고 힘든 곳을 외부로 나타낸다. 균열, 누수, 백태, 박리, 박락, 재료 분리, 철근 노출 등이 그러한 현상이다. 시설물의 유지 관리를 통해 내구 연한(수명)을 최대한 늘려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상을 면밀히 보고, 문제가 발생한 곳에 대해서는 정확한 원인 분석과 보수, 보강 등의 처방을 실기(失期)하지 않고 해야 한다. 또한 시설물의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내 현실을 고려한 적절한 유지 관리 체계의 개선도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둘째, 시설물의 유지 관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정기점검, 정밀점검, 특별점검, 정밀안전진단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시설물 유지 관리 기술자들의 주 업무가 시설물을 보살피고, 문제점을 조사 분석한 후 이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는 전문분야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 즉 성수대교, 부산지하철, 인천공항, 부산신항만의 주치의라고 하는 점을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사람이 아프면 먼저 병원에 가서 정확한 병명을 알아야 한다. 편두통이 있다고 해서 쉽게 진통제를 먹기 시작하면 나중에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시설물이 고령화되고 균열, 누수 등의 현상이 나타나면 정확히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임시방편의 균열 보수만 실시한다면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정확한 병명을 알고자 병의원에 지출하는 비용이 아깝지 않듯이 정밀안전진단 비용도 결코 헛돈이 아니다. 셋째, 안전관리 기법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시특법 대상 6만여개 시설물 중 30년 이상 경과한 시설물은 4000여개며, 이 중 D등급 이하의 시설물이 40개 내외(1.0% 수준)나 된다. 이러한 결과가 시설물 유지 관리 업무를 충실히 해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평가 기준이 상이해서 그러한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연구 분석도 필요하다. 공사 중 안전, 공사 완료 후 시설물 안전엔 99퍼센트가 없다. 시설물은 말이 없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의 병명을 알아내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전문성이 필요하다. 더 살펴보고, 확인하고, 만져보면서 관리해야 한다. 특별법 제정 이후 전문화돼 온 유지 관리 활동이 더욱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발전해야 한다. 건설과 관련된 사고는 어제도 발생했고 내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충분히 막고 예방하며 체계적인 관리를 한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뿐 아니라 시설물의 내구 연한(수명)도 늘릴 수 있다. 100세 시대가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처럼….윤태국 한국시설안전공단 지반안전실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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