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그사람에서 강남스타일까지, 노래로 본 '도시' 강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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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희미한 불빛 아래서, 마주보는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중략). 자정은 벌써 지나 새벽으로 가는데, 아 내 마음 가져간 사람 신사동 그 사람".1988년 발표돼 연말 가요대상을 휩쓴 가수 주현미의 대표적 히트곡 '신사동 그 사람'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은 그렇게 대중가요 가사로 등장해 대한민국 국민이면 대부분 가보진 않았어도 이름은 아는 유명한 동네가 됐다. 그런데, 주인공이 "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람을 만났던 장소가 왜 하필이면 '신사동' 이었을까? 그만큼 신사동을 비롯한 당시 강남구 일대가 대중들에게 익숙한 곳이었으며, 유흥 문화의 중심지였다. 당시 강남 지역은 1980년대 들어 본격화된 개발 붐을 타고 순식간에 서울의 대표적 유흥가로 자리잡아 불야성을 이뤘었다. 강남역 뉴욕제과 앞은 강북의 대표적 유흥가였던 명동ㆍ종로ㆍ대학로ㆍ신촌 등을 제치고 젊은이들의 단골 약속 장소로 급부상했다. 양재역 인근 뱅뱅사거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등은 쇼핑은 물론 데이트, 회식, 모임, 접대 등을 위해 몰려드는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물론 지금도 이 곳들은 홍대 앞ㆍ경리단길 등의 신흥 유흥가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그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이같은 현실은 서울시의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4년 말 현재 강남구의 인구는 58만1000여명으로 1035만명의 서울시 전체 인구에 비해 약 20분의1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흥업소 숫자는 타 자치구의 추종을 불허한다. 단란주점 328개, 유흥주점 276개로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에 가장 많다. 유흥주점 수는 서울 자치구 평균 90.8개보다 3배,. 단란주점 수는 서울 자치구 평균 116.76개보다 약 2.8배에 달한다. 서울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유흥주점 숫자는 서울 전체(2270개)의 12.15%를 차지한다. 단란주점 숫자도 서울 전체(2919개)의 11.2%에 달한다. 특히 강남구에는 최근 들어 신ㆍ변종 성매매업소가 창궐하고 있다. 미아리 텍사스촌, 청량리 '588' 골목, 장안평 등 대표적인 성매매업소 밀집 지역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단속의 철퇴를 받아 사실상 존폐 위기에 처한 반면, 강남 지역은 오피스텔ㆍ주택가로 숨어 든 신ㆍ변종 성매매업소들이 우후죽순이다. 오죽했으면 강남구청이 성매매업소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정도다. 강남구는 올해 2월부터 '도시선진화담당관' 부서를 신설해 집중 단속에 나서고 있다. 학교와 주택가 주변의 신ㆍ변종 성매매업소 32곳을 적발해 19곳을 철거했고 8곳은 철거 중이다. 5곳에는 이행강제금이 8900만원 부과됐다. 이중에는 아파트 5채를 한꺼번에 월세 임차해 운영 중이던 회원제 성매매업소도 포함돼 있어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강남구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적발한 불법 성매매 업소는 91곳에 이른다. 지난 겨울에도 오피스텔을 빌려 영업을 해온 불법 성매매 업소 12곳, 초등학교에서 7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영업한 '키스방' 등 20곳, 교복 등 복장을 착용하고 가학성 변태 성매매를 한 업소 23곳 등 48곳이 철거됐다. 이처럼 강남구가 유흥ㆍ성매매업소 밀집 지역이 된 이유는 뭘까? 연원을 추적해 보면 서울시가 1970년대 강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실시했던 도시계획 정책의 부메랑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시는 강북 지역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1966년 제3한강교(한남대교) 착공과 함께 강남 신도시 개발에 착수한다. 시는 강남 지역의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관공서 이전ㆍ법조타운 조성 등 부양책을 썼다. 넓은 도로와 지하철 2호선ㆍ강남고속터미널 등 기반 시설도 집중 투자했다. 시는 특히 1972년 4월 서울의 핵심 상업 지구였던 4대문 안 주요 지역을 '특정시설제한구역'으로 지정해 상업시설의 신규 설치를 금지하는 특단 조치를 취했다. 구체적으로 종로ㆍ중구의 전역 및 용산ㆍ마포ㆍ성북ㆍ성동구의 일부인 2,780만㎡(840만평)의 구역에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등의 신규 설치를 불허했다. 또 종로구와 중구의 소공동, 무교동, 서린동, 다동, 도렴동, 적선동, 장교동, 남창동, 을지로1가, 서울역, 서대문로터리, 남대문로3가, 태평로2가, 광화문 등의 지역을 재개발지구로 지정해 건축의 신축ㆍ개축ㆍ증축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종로ㆍ중구 일대는 백화점, 도매시장, 유흥업소는 물론 일반 요식업도 허가를 받기 힘들었다. 결국 중구 다동ㆍ무교동에 산재해 있던 유흥주점들과 종로구 공평동ㆍ인사동 등을 중심으로 퍼져 있던 접객업소들은 규제도 없고 각종 세금도 감면해 주는 강남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여기에 더해 서울시는 학부모들의 '맹모삼천지교'까지 활용하고 나선다. 4대문 안 명문 고등학교들을 '반강제로' 강남으로 옮겨 이른바 '강남 8학군'을 조성한 것이다. 당시 서울고 학생들은 학교 이전에 반발해 광화문ㆍ종로에서 반대 시위를 벌이기 까지 했었다. 이같은 촉진 정책으로 인해 강남구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부촌ㆍ교육 1번지, 쇼핑ㆍ상업 중심지로 자리잡은 동시에 유흥ㆍ성매매업소의 밀집지라는 오명도 안게 됐다.
강남스타일 동상 조감도
때마침 지난 2012년 강남의 이같은 이중적 현실을 잘 보여준 새로운 대중가요가 등장한다. 가수 '싸이'의 세계적 히트곡 '강남스타일'이 그것이다. 싸이는 강남스타일에서 "(전략)…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후략)"라고 노래한다. 어떤가, 밤과 낮이 다른 강남의 모습을 빗대어 묘사한 '리얼리즘'의 극치 아닌가?*PS : 이 글을 맺을 즈음, 강남구청이 4억원을 들여 싸이의 '말춤' 손동작을 형상화한 '강남스타일'이라는 동상을 지역 랜드마크로 세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촌스럽다', '발상이 유치하다'는 반대 여론에도 강남구청은 외국 관광객들의 포토존용으로 기어이 강행하겠다는 태세다.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가 되고 싶다는 싸이는 이 소식을 반기고 있을까. 걱정되는 것은 부유층의 왜곡된 욕망을 풍자해 세계적 인기를 얻은 '강남스타일'의 명성이 조악한 동상으로 인해 훼손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민방위 교육에 갑자기 나타나 일방적인 얘기를 늘어 놓다가 항의하는 시민에게 "듣기 싫으면 나가라"고 외치는 강남구청장에겐 '소 귀에 경 읽기' 일테니 그만 하겠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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