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지도자의 단호함에 대한 걱정

이명재 논설위원

세상에는 선한 사람 아니면 악한 사람만 있으며, 그래서 내편과 상대편이 있을 뿐이며, 달성해야 할 목표는 단 한 가지이고 그걸 이루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어서 목표점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로지 정해진 거리를 얼마나 빠른 시간에 달리느냐밖에 없다. 이런 세상이라면 필요한 구호는 "앞만 보고, 빨리빨리 달려라. 여기서 벗어나는 이는 무지한 사람들이며, 우리의 적이고 악의 무리다"가 될 것이며, 뛰어난 지도자는 이 단순ㆍ명쾌ㆍ단호한 신념을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눈 한번 옆으로 돌리지 않고, 기계와도 같은 냉담함으로 지칠 줄 모르고 외치는 사람일 것이다.그러나, 세상에 그런 사회는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선악으로만, 양편으로만, 한 가지 목표로만 이뤄진 사회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극히 순수하며 지극히 단순한 '선악 사회'에서 살듯 단순명쾌한 신념과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단호한 태도로 무장한 이가 단순하지 않은 복잡한 세상에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히 그런 이가 사회를 이끈다면 어떻게 될까. 둘 중 하나에 이상이 올 것이다. 그 사회가 고장 나거나 그 '순수한' 지도자의 사고회로와 행동체계가 심각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미국의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지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바틀렛 대통령은 연임을 위한 선거 과정에서 짧고 명쾌한 화법으로 인기를 끄는 상대 후보에게 고전하다가 TV 토론에서 일격에 그를 제압한다. "10단어 답변(ten-word answer), 좋지요. 그렇다면 그 10마디 말 다음에 또 다른 10마디가 있는가요? 또 그 다음엔요? 한 나라, 한 사회가 그렇게 10마디 말로 압축될 만큼 간단치는 않습니다."남북 협상 과정에서 남쪽 당국 측에 흔들림 없이 단호한 대응을 주문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찬사를 받고 있는 듯하다. 전반적인 남북 관계로 시야를 넓힐 때 과연 그 단호함이 제대로 쓰였는지는 의문인지만, 그럼에도 일정한 평가를 할 수는 있겠다. 다만 한편으론 걱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같은 단순함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그래서 단호한 지도자가, 혹 단호함이라는 자신의 강점에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그래서 '괜한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은 간결하고 명료한 것이 좋다. 그러나 메시지의 단순함이 그 메시지를 낳는 사고의 단순함이어서는 안 된다. 복잡한 사유를 거치지 않은 '순수한 단순함'으론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없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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