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 논설위원
다케다 초베이(長兵衛)는 에도시대(1603~1868년) 절정기인 1781년 오사카 도쇼마치에 한약재를 파는 약국을 개업했다. 그의 나이 32살 때였다. 나라현 출신인 그는 약재 중개도매상 오미야 기스케의 도제로 들어가 일을 배운 뒤 독립한 것이다. 오미야는 그가 독립할 때 자기 사업의 반을 떼줬다. 다케다는 도매상한테서 약재를 사서 산매상과 의사들에게 약을 팔았다. 그는 당시 전통에 따라 후계자에게 '초베이'라는 이름을 물려줬다. 다케다 초베이 2세, 3세, 4세,5세가 가업을 승계했다. 다케다 초베이 4세는 말라리아 약 등을 수입하다 수요가 늘자 해열제 등으로 쓰인 염산키니네, 설사제 등을 생산하는 약품 공장을 지었다. 1914년에는 일본 제약 기업 최초로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그의 아들 다케다 초베이 5세는 1925년 법인을 설립하고 1943년에는 다케다 화학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다케다 초베이 6세는 1943년부터 1974년까지 31년간 사장으로 재임했다. 그의 3남 다케다 구니오 역시 10년간 사장과 회장직을 맡았다. 짧은 재임기간에도 구니오 회장은 일본 경영계에서는 주목을 받는 인사다. 그는 창업가문 출신인데도 2009년 회사를 전문 경영인에게 넘기고 회사를 완전히 떠났다. 그는 특히 자기를 비롯해 간부 자녀의 다케다 입사를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간부 자녀가 들어온다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옥석이 뒤섞여 들어올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면 회사에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옥석혼효(玉石混淆)'를 막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케다제약은 일본에 뿌리 깊이 박힌 가업 중시, 가업 승계의 전통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케다는 '성실'을 중시하는 '다케다이즘'을 낳았다. 일본에는 다케다제약처럼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에 즐비한데도 가업 승계와 관련된 잡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신제품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00년 전에 R&D센터를 만들어 세계적인 제약기업으로 우뚝 선 다케다는 한 예이다. 기업 역사가 일천한 한국과는 딴판이다. 한국에서는 아버지만 잘 만나면 경영자가 되는 것은 보통이다. 본인과 간부의 자녀 입사를 금지시킨 다케다 구니오는 하늘이 두 조각 나도 나오기 어렵다. 그렇다고 형제 간 우애가 있는 것도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을 비롯해 금호그룹 형제난, 롯데그룹 경영권 다툼 등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났다. 재계 5위인 롯데그룹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면서도 '자기 이름에 부과된 의무'를 중시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일본의 문화 풍토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고 있다. 롯데 경영진이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를 말한다는 이유로 일본인이며, 따라서 롯데그룹은 일본기업이라고 사람들은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은 겉만 보고 하는 말일 뿐이다. 루스 베네딕트가 말한 대로 속에 칼을 품고 살면서도 겉으로는 예의 바른 일본인들은 경영권 다툼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가족 간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운 한국을 일본인들은 어떤 눈으로 볼까. 그들은 우리를 대등한 상대로 볼까. 아니면 그들의 표현대로 한 수 아래인 '하수'로 볼까. 속을 드러내지 않은 일본인들이 여기에 답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나는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일본인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서도 일본인 같지 않는 행동을 하는 롯데를 보면 그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34년11개월14일간 지배하면서 수탈을 일삼고 핍박을 강제한 나라로 우리가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나라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70여년 전 탱크와 전투기, 항공모함과 잠수함까지 만든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가업의 승계 전통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일본이다. 일본을 이길 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해도 힘들 판에 경영권 다툼을 벌여서야 가능하겠는가. 박희준 논설위원 jacklon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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