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은은 "단 한 명의 독자도 나에겐 너무 많다"고 말한 시인이다. 단 한 명의 독자와 단 한 명의 시인이 독대한 시 한 편에 흐르는 적막강산! 대체 이 시인은 어떤 시를 쓰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의 시를 읽노라니 뜻밖에 엉뚱한 곳에서 섹슈얼하다. 쑥 캐는 자세와 쉬하는 자세가 병치됨으로써 일상적 노동일 수도 있는 쑥 캐기가 원시적인 생기를 얻고, 고추밭의 잡초 한 떨기를 뽑는 것과 지구의 불알을 잡아당기는 것이 나란히 놓임으로써 낯설고 기발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쪼그리고 앉아/쉬하는 자세가 가장 좋다//멀리서 보면 제 것을 들여다보는 듯,/허나 정말로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쑥이 다 올려다보고 있다//고로 바지보다는 통치마를 입어라 입어보면 안다/동의보감에도 나와 있다 아니 눈 먼 소녀경이던가? 적당히 자란 연애를 자르듯 칼질은 정확해야 한다/싱싱한 추억으로 국을 끓여 먹을 수도 있다//오금이 저리거든, 오금 저렸던 기억들을 한 칼 한 칼 마음에 저며라/인생 공부에 칼 같은 도움이 된다(……) -이화은의 '쑥 캐기' 중에서 내숭을 떨지 않는 직설에 숨겨놓은 기발한 반전이 웃음을 짓게 한다. 가령, 정말로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쑥이 다 올려다보고 있다는 태없는 묘사의 위력. 시경(詩經)의 쑥 캐는 여인과 뜻밖에 닮아 있음을 느끼는 건 그 원형적인 소박함과 사랑의 나르시시즘 때문일까. 긴장을 확 풀어놓지만, 군더더기는 없다. 비 온 이튿날/고추밭의 잡초 한 떨기를/무심코 뽑아 올렸는데…//손 끝에 물컹 딸려 오는 지구 한 덩이깜짝 놀라 탁!/놓아버리기는 했지만/불알을 잡혀 동그랗게 나뒹굴던/한 남자를 생각했으니//내가 지구의 급소를 건드린 것이다/큰 일 날 뻔한 것이다(……) -이화은의 '급소를 건드리다' 중에서 평범한 일상이 그녀의 손 안에 들어가면 비범해진다. 그 마력은 언어를 부리는 솜씨와 화법의 능청스러움에 있다. 흙 한 덩이에 붙인 우주적인 상상력. 이 종횡무진을 만나는 현기증. 그야말로 불알을 잡힌 기분이 아닌가. 그가 말한 '그의 단 한 명의 독자'가 내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뭉게뭉게 일어난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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