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기자
'반가운 담벼락'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편의상 ‘벼락박’을 ‘벼랑박’으로 쓰기로 합니다. 벼랑박은 가끔 쓰이는 단어지만 사전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벽’임은 확실해요. ‘벼랑박에 O칠할 때까지’라는 관용어구에서도 알 수 있죠. 벼랑박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요. 한 인터넷 포털의 오픈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올랐어요. ‘낭떠러지를 뜻함. 단순히 벽을 뜻하는 말로 주로 쓰임.’ ‘벼락’에서 ‘벼랑’을 연상하고 낭떠러지로 연결한 듯합니다. 저는 이 풀이에서 ‘낭떠러지’ 부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답을 찾는 실마리는 아래와 같은 발음 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거품 → 버끔▲ 어리숙 → 어수룩▲ 국물 → 멀국▲ 허겁지겁 → 허벅지벅▲ 직접 → 집적▲ 손톱깎기 → 손톡깝기우리가 흔히 듣는 앞뒤 음소가 뒤바뀌는 현상입니다. 발음이 뒤바뀐 오른편 단어의 일부는 사전에 등재됐어요. 손톡깝기는 제가 ‘집적’(?) 개인적으로 접한 사례입니다. 벼랑박도 그런 단어입니다. ‘벼랑박’은 ‘바람벽’에서 비롯됐습니다. 모음이 자리를 바꾸고 ㅁ 받침의 발음이 변했습니다. ‘바람벽’ ‘벼람박’ ‘벼랑박’으로 바뀌었어요. 여기서 ‘벼락박’이 나왔고요. 바람벽(壁)은 사전에 나옵니다. ‘방을 둘러 막은 둘레’라고 풀이됐어요. ‘바람벽’은 ‘바람’과 관련이 있을까요?‘국어어휘론신강’(심재기 저)을 보면 ‘바람벽’ ‘생강’ 등이 함께 설명돼요. 생강(生薑)은 우리말 ‘새앙’과 같은 뜻의 한자 ‘강(薑)’이 합쳐진, 말하자면 반복 단어입니다. ‘새앙강’이라고 하다가 ‘생강’이 됐고, ‘생’에도 한자를 달아 生薑이 됐습니다.서울 성북구 삼성동 장수마을 담벼락
바람벽 역시 뜻이 같은 우리말 ‘바람’과 한자 ‘벽’이 결합한 단어입니다. 옛날에는 ‘바람’이 ‘풍’(風) 외에 ‘벽’(壁)도 가리켰다는 말입니다. 이는 국립국어원의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stdweb2.korean.go.kr)에서 찾아보면 확인됩니다. 바람은 ‘벽의 황해도 방언’이라고 나옵니다. ‘국어어휘론신강’은 두 ‘바람’ 가운데 ‘풍’을 지칭하는 바람은 그대로 두고, ‘벽’을 뜻하는 바람은 ‘바람벽’으로 바꿔 부르며 구분했으리라고 추정합니다. ‘바람벽’이 변한 ‘벼락박’이 많이 쓰이면서 ‘벼락’이 떨어져나옵니다. ‘벼락’은 ‘담’을 앞세워 ‘담벼락’이 되면서 ‘벽’(壁)이라는 뜻을 갖게 됩니다. 그러자 ‘담벼락’을 ‘담벽’(담壁)이라고 쓰는 경우도 나왔습니다. ‘벼랑박’은 벼랑이나 낭떠러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바람벽’은 바람을 막는 용도가 아닙니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