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최근 조선시대 인조 이후 우리나라 지배 세력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가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제시한 '노론지배론'은 다음과 같다. "임란 이후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나라 지배권력은 한 번도 안 바뀌었어요. 노론 세력이 한일합방 때도 총독부에서 합방 은사금을 제일 많이 받았지요. 노론이 56명, 소론이 6명, 대북이 한 사람. 압도적인 노론이 한일합방의 주축이거든요.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도 행정부만 일부 바뀐 거지, 통치권력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외세를 등에 업고 그렇게 해왔지요. 대학, 대학교수, 각종 재단, 무슨 시스템 이런 것들 쫙 다 소위 말하는 보수진영이 장악하고 있어요." 신 교수는 이전에도 이런 인식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2004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노론 중심의 권력그룹이 당시(1623년 인조반정)에 형성됐다"며 "(노론은) 조선 말기까지 권력을 행사하고 일제 치하, 미군정과 군사정권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배적 지위를 관철해왔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역사 작가 이덕일씨가 내놓은 것과 비슷하다. 이씨는 조선 후기는 노론 일당독재 시기였고 노론은 일제 강점기에도 세력을 유지했으며 이는 친일사관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다. 해방 이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층이 노론의 후예로 충원됐다는 설은 반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실과 다르다. 인조반정 이후 어땠는지 '두산백과사전'의 '노론' 항목을 살펴보자. 노론은 숙종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세력이 되지 못하다가 경종대와 영조대에서 소론과 대립하면서 정치를 주도했다. 그러나 경종대에 노론은 소론에 의해 반역으로 몰려 김창집 등 노론 4대신이 처형됐다. 노론은 영조가 즉위한 뒤 반격에 나서 소론 4대신을 제거하고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영조와 정조가 붕당을 깨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전통적인 붕당의 의미는 퇴색했다. 노론은 18세기 말 시파와 벽파로 나뉘었다. 노론의 명분과 이념은 19세기 이후로도 존속했지만 정권을 잡아 정부를 운영하는 단일 붕당으로 볼 수는 없게 됐다. '지배 권력은 (노론에서) 한 번도 안 바뀌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깨짐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근거 없고 의미도 의문인 주장이 적지 않은 사람을 현혹시킬까. 전문가들이 쌓아올린 연구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가 분야를 막론하고 팽배한 게 아닐까.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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