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논 밭길 걸어갈 새 쓸쓸한 인가엔 연기도 없어라/만나는 사람 모두 부상 입고 신음도 하고 또한 피를 흘리네(靡靡踰阡陌 人煙 蕭瑟 所遇多被傷 呻吟更流血) 시성(詩聖) 두보의 북정(北征)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북정'은 두보가 '안사의 난' 때 피난 가 있다가 가족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쓴 시다. 이 시에서 두보는 우국충정과 함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는데 이 시구처럼 황폐화된 민가와 불쌍한 백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내전과 테러로 자국 내에서 집을 잃고 떠도는 '내부난민'이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1100만명 가까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비정부기구 노르웨이난민협의회(NRC)의 내부난민감시센터(IDMC)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98만4874명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고향을 떠났다. 매일 3만여명이 기약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된 셈이다. 보고서는 지금까지 발생한 세계 전체의 내부난민 수가 3800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인구의 80% 가까운 숫자다. 무고한 민간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내전은 대부분 정치, 종교적인 이유로 발생한다. 지난해 내부난민이 가장 많이 발생한 이라크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정부군 간 내전으로 지난해만 218만명이 집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됐다. 4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는 전체 인구의 40%가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난민도 65만명이나 생겼다. 내전의 당사자들은 어느 쪽이나 거창한 구호를 내건다. 신의 이름을 내걸면 '성전(聖戰)'이 되고,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면 '구국(求國)'의 전쟁이다. 안타깝게도(?) 백성들의 삶을 개선시키겠다는 슬로건을 내건 전쟁은 찾기 어렵다. 하긴 국민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가정의 달인 5월,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에서 스승의 날까지 이어지는 릴레이 '~날' 때문에 지갑이 얇아진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게다가 계절의 여왕이란 별명에 어울리게 날씨도 좋아서 결혼식은 왜 이리 많은지…. 이런 불평 중에 난민 기사를 읽으니 복에 겨운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랑 관계없는 먼 나라 얘기 같지만 불과 우리도 60여년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난민 신세였다. 용돈이 궁해지기는 했지만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을 챙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5월이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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