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 또한 세상을 덮을 만하나 때와 운이 불리하니 추 또한 달리지 못하는구나 (力拔山氣蓋世 時不利兮不逝). 유방과 천하의 패권을 두고 벌인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패한 항우가 읊었다는 '해하가'의 첫 구절은 2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비장한 항우의 시에 연인 우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四面楚歌) 대왕의 기가 다했는데 천첩이 살아서 무엇하리오"라고 노래하며 스스로 자결하는 '패왕별희'의 장면은 언제 봐도 비장하다.우희와 이별을 한 항우는 유방의 포위망을 뚫고 오강(烏江)이란 곳에 도착한다. 강만 넘으면 고향인 강동. 뱃사공이 항우에게 "강동은 충분히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며 배에 오르기를 권했다. 항우는 "강동 부형들이 나를 다시 받아준다고 해도 함께 거병한 8000자제를 모두 잃고 어찌 그들을 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배에 오르지 않고 최후를 맞이했다.유방은 달랐다. 항우에게 참패해 도주하던 유방은 마차가 항우군에 쫓기자 아들과 딸을 마차에서 버리면서까지 도망쳤다. 하후영이란 장수가 버린 아들과 딸을 다시 마차에 태우기를 10여차례나 했다고 한다. 작가(사마천)의 상상력이 더해진 장면들이겠지만 항우와 유방의 이 같은 태도는 두 사람과 천하의 운명을 갈랐다. 여러 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선 유방은 천하의 주인이 됐고, 한 번의 패배(결정적이긴 했지만)에 포기를 한 항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단돈 1000원으로 시작해 2조원대 기업을 일궜던 한 기업인이 목을 맸다. 회사가 위기에 빠지고 경영권을 잃은 데다 대형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 직전까지 몰리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평생을 바쳐 일군 성과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21세기 들어 정상에 섰던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검찰 수사를 받는 것도 치욕스러운데 이런 과정들이 언론을 통해 전국민에게 공개되니 더욱 치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회사(조직)까지 건드리니 자기 선에서 끝내고 싶은 마음도 생겼을 법 하다.오강을 건너지 않은 항우는 역사의 패자가 됐지만 덕분에 그의 고향 강동은 추가 피해를 입지 않았을 수 있다. 사마천 같은 후세의 사가 덕이긴 했지만 비장한 영웅의 최후를 멋지게 보여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과 딸을 버리고 도망가던 유방의 처지도 '사면초가' 속 항우와 다르지 않지 않았을까.전필수 증권부장 philsu@<ⓒ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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